트럼프 지지 폭도들이 의회를 공격하는 초유의 반란사건이 터진 지 10여일,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의아해 한다. 폭도들이 어떻게 그렇게 쉽게 의사당을 점거할 수 있었느냐는 것이다.
민주주의의 심장, 의사당은 2,000명의 의회경찰이 보안과 경비를 책임지는 삼엄한 곳이다. 하지만 6일 폭도들이 밀어 닥쳤을 때 의회경찰이 보인 태도는 ‘삼엄’과는 거리가 멀었다. 경비가 허술하다 못해 몇몇 경찰은 폭도들을 안내하는 듯한 모습마저 보였다. 실시간 중계로 전 국민이 난입점거 광경을 지켜보았으니 경찰은 유구무언이다.
폭도들의 대열은 요란했다. 남부 연합기, 백인우월주의 배너, 신 나치 상징물, 흑인 린치의 상징인 교수대와 올가미 등등을 치켜들고, Q어논(정계, 재계, 언론계에 포진한 사탄 숭배 소아성애자들을 쳐부수려 트럼프가 비밀전쟁을 수행 중이라는 등의 극우 음모론) 티셔츠를 차려입고, 백인우월주의 상징 문신을 새긴 가슴을 드러낸 채 뿔 달린 바이킹 털 투구를 쓰기도 했다.
이들 폭도 앞에서 의회경찰은 ‘신사적’이었다. 친절하게 보안 펜스를 밀쳐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즐겁게 같이 사진을 찍기도 하고, 복잡한 의사당 내부를 안내해 주기도 했다. 물론 이들은 예외적인 극소수이지만 전반적으로 “의사당 점거, 참 쉽네!”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그래서 당장 터져 나온 것이 “경찰이 왜 이러나, 왜 이렇게 다른 가”라는 비난이다. 불과 6개월 전 워싱턴에서 열린 BLM(흑인생명 소중하다) 시위 때와 경찰의 대응수위가 달라도 너무 다르다는 것이다. 당시 경찰은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시위대에 최루탄과 고무탄을 동원하며 강경진압에 나섰다. 트럼프 지지 시위대와 BLM 시위대의 차이는 피부색. 전자가 거의 모두 백인남성이라면 후자는 흑인 등 유색인종이 대부분을 차지했다.
만에 하나 BLM 시위대가 의회 난입을 시도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마도 대 학살사태가 벌어졌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미국 치안당국이 인종차별 반대 등 유색인종이 주를 이루는 시위에 대해 훨씬 강경하다는 사실은 통계로도 나와 있다. 비영리기구 ‘미국위기감시’가 지난해 4월부터 미 전역 1만3,000여건의 시위를 조사한 바에 따르면 경찰이 최루탄, 고무탄을 사용하거나 곤봉 등으로 구타한 무력 진압은 540여건. 그중 511건은 인종차별 반대 등 좌파 시위, 백인들이 주 구성원인 우파 시위의 경우는 33건에 불과했다.
백색에는 너그럽고, 검은색 갈색에는 과격해지는 경찰의 이중 잣대는 어디서 오는 건가. 두말 할 것도 없이 뿌리 깊은 인종차별의 잔재이다. 미국경찰의 시작은 노예 순찰대였다. 도망 노예를 잡아들이고, 반항하는 노예들을 응징하기 위해 1700년대 초반 사우스캐롤라이나를 시작으로 남부 주들에 등장한 자경단이 경찰의 전신이다.
현대적 경찰은 19세기 초 보스턴에서 처음 시작되었다. 이어 뉴욕, 시카고, 필라델피아 등지에 생겨났지만 당시는 경찰 채용기준도 훈련도 없었다. 백인남성 일색 경찰의 업무는 ‘위험한 하층민’ 통제. 주로 흑인, 이민자, 빈곤층 다스리기였고, 경찰은 이들에게 무자비했다.
이제 경찰은 조직도 바뀌고 인종적 구성도 바뀌었다. LA 한인타운에는 친절한 한인경관들이 있어 한인들이 많은 도움을 받고 있다. 그럼에도 툭하면 인종차별 꼬리표가 따라 붙는다. 그도 그럴 것이 이번 의사당 난입 폭도들 중에도 미국 각지에서 온 현직경찰이 여럿 포함되었다. 경찰배지를 버젓이 달고 나타난 자도 있었다. 경찰이 백인우월주의자라면 제2, 제3의 조지 플로이드는 계속 등장할 수밖에 없다. 인종주의자들을 단호하게 처벌해서 다시는 경찰이 인종차별 도마 위에 오르지 않기를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