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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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할머니(2)

2021-01-11 (월)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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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세에 돌아가셨다. 학력은 없다. 학교를 다니신 적이 없다. 다섯살에 생모가 자기보다 더 어린 동생을 데리고 시집가 버리는 바람에 외숙모 집에 버려졌단다(?). 학교를 다녀본 적도 없어 글을 모르는 이 사촌 동생을 사촌 오빠가 몰래 한글을 가르치려 시도했었단다. ‘가 나 다 라 마 바’까지 배우다 외숙모한테 들켜 실컷 두들겨 맞고 그쳤단다. 그리고 부엌과 농사일로 평생을 사셨단다.

인물이 아주 좋으셨다. 당시에도 인텔리라는 멋진 청년을 남편으로 맞았다. 그런데 그 멋진 청년은 멋진 남편은 아니었었나 보다. 아내를 함부로 대하고 경제적 재량권을 전혀 주지 않고 또 작은 부인까지 겪게 했다.

슬하에 아들 셋에 따님 한 분을 두었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집을 장만하려고 안먹고 안 쓰며 살다가 집 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갑자기 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에게 며느리가 셋이 있었다. 그런데 늘 막내며느리를 그리워하고 막내며느리와 같이 있기를 좋아하셨다. 어쩌다 막내아들의 집에 오면 그렇게도 좋아하시고 굽은 허리로 밀고 다니면서 움직이셨단다. 평생 처음 받아보는 매달 용돈(수입)도 교사로 일하던 막내며느리가 자기 월급날마다 주었단다. ‘가 나 다 라 마 바’까지 밖에 읽으실 수 없었던 그분에게 한글을 같이 앉아 깨우쳐 드린 막내며느리. 할머니는 한글을 깨우치신 후 다른 어느 책도 아닌 성경책만을 읽으면서 말년을 보내셨단다.


굽은 허리가 아프셔서 거의 앉아서 밀고 다니시면서 그 할머니는 손자를 볼 때마다 “배 고프시까? 식사 드시시까?(사투리가 심하셨다)”라고 물으셨다. 그리고 또 하루에 몇 번을 봐도 똑같은 질문을 하신다. 그러면 손자가 소리를 지르며 “밥 먹었어요. 그만 물어보세요!” 한다.

나도 요새 손주들을 만나면 할 말이 “밥 먹었니?” 뿐이다. 전자 게임 이름도 모르고 새로 나온 만화 영화 속의 인물들을 아는 것도 아니라서 나눌 얘기가 없다. 하물며 다른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것이 없으셨던 할머니의 그 물음은 “내가 너를 사랑한다. 무언가 해주고 싶은데 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어서”였으리라.

할머니 돌아가시고 할머니의 옷을 끌어안고 심하게 울던 그 손자는 할머니가 수없이 하던 사랑의 고백을 그제서야 깨달아서였을까?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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