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허로움이 들판에 홀로 선 겨울나무 같다. 돌아보면 2020년은 거대한 상실의 통로였다. 잃고 또 잃었다. 소중한 이들을 잃었고, 생계의 기반을 잃었으며, 벗들과 아픔을 나눌 소박한 위안의 자리들마저 잃었다. 반복되고 연장되는 봉쇄와 격리 속에 기진맥진 2020년을 넘기고 새 날들 앞에 서니, 잎을 다 떨어트리고 선 고목처럼 허허롭다.
13개월 전 풍문처럼 시작되었던 코비드-19 팬데믹은 인류의 가장 보편적이고 다급한 현실로 자리 잡았다. 지난 한해 미국은 시끄러웠다. 대통령선거를 둘러싸고 나라가 둘로 갈라져 일 년 내내 싸웠다. 끝내 트럼프 지지 폭도들이 바이든 대선승리 공식 확정절차를 막겠다며 연방의사당에 난입하는 무법사태까지 발생했다. 정치적 양극화의 파장이 위중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의 삶을 예외 없이 뒤엎어놓은 것은 바이러스였다.
바이러스는 우리의 생명과 생활, 생계를 공격했다. 지난 1년 미 전국에서 코로나19로 숨진 사람은 30여만에 달했다. 가족친지들은 환자의 곁에도 가지 못한 채 애를 태웠고, 그들 중 많은 수는 임종도 못하고 장례식에도 참석하지 못한 채 소중한 인연들을 떠나보냈다.
생명을 잃지 않으려 채택한 방역지침, 사회적 거리두기는 우리의 생활을 바꾸었다. 아무도 만나지 못하고 집에만 갇혀 지내는 생활은 경제활동 둔화로 이어졌다. 사람이 움직여야 돈이 움직이고 돈이 움직여야 경제가 살아나는 간단한 원리를 팬데믹은 확실하게 보여주었다. 니만 마커스, J.C.페니 등 100여년 역사의 대형 백화점, 유명 식당체인들이 줄줄이 파산신청 했고, 단골 식당, 미용실 등 정들었던 이웃 업소들도 문을 닫았다.
옐프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부터 9월 사이 미 전국에서 16만 3,700여 업소가 문을 닫았다. 하루 평균 800개꼴이다. UC 산타크루즈 통계는 이보다 더 암울하다. 지난 2월부터 9월 사이 근 31만 7,000개 업소, 매일 1,500개꼴로 문을 닫았다. 수천만 명이 생존의 벼랑 끝으로 내몰렸다.
문제는 이후 상황이 훨씬 더 심각해졌다는 사실이다. 확진자와 사망자 수가 가파르게 상승하고 있다. 7일 미 전국 코로나19 사망자는 4,027명, 이제까지 최고기록이다. 인구 1,000만의 LA 카운티에서는 8분에 한명 꼴로 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이 엄청난 인명피해(전 세계 누적 확진자 8,740만, 사망자 189만)와 경제적 사회적 손실을 겪으며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인간이라는 종으로서, 개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첫째는 희망을 잃지 않는 것이다. 과학에 거는 희망이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등장 1년이 못돼 백신이 개발되고 접종되기 시작했다. 질병과의 전쟁에서 백전백패했던 인류는 과학의 눈이 열리면서 승리하기 시작했다. 인류를 떼죽음으로 몰고 갔던 페스트, 콜레라, 결핵 등 세균(박테리아)성 질병들은 이제 정복되었다. 바이러스는 종류가 많은 데다 변이에 변이를 거듭해 여전히 난적이지만 과학계가 힘을 모은다면 통제의 날은 올 것이다.
둘째는 가치관의 재정립이다. 개발에서 보존으로 가치관을 바꿀 때가 되었다. 지난 한 세기 개발의 속도와 규모는 도를 넘었다. 벌목, 채굴, 개간 등 무분별한 삼림파괴로 야생 생태계는 훼손되고, 내몰린 동물들을 포획하고 죽이면서 인간과 야생동물 간 밀접접촉이 증가했다. 이때 야생동물을 숙주로 삼던 바이러스가 인간에게로 넘어오면서 신종 바이러스는 탄생한다. 인수공통 감염병의 출현이다.
개발이 이득인가, 야생생태계 보존이 더 이득인가 냉정하게 따져보아야 한다. 삼림파괴를 계속하는 한 인류는 인수공통감염 바이러스라는 저승사자를 계속 맞을 수밖에 없다.
셋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자각이다. 우리는 ‘혼자’ 보다 ‘함께’ 가 자연스러운 존재이다. 자가 격리가 길어지면서 많은 사람들이 우울감에 빠졌다. 누군가와 함께 하는 따스함으로 행복해지는 우리의 본성에 어긋나기 때문이다.
나만 아는 이기적 존재 같지만 사실 우리는 함께 나누어야 더 행복한 존재이기도 하다. 팬데믹으로 사회와 경제가 얼어붙으면서 비영리단체들은 한동안 고전을 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 지난 9월까지 모금현황을 보면 중소규모 자선단체들에 대한 기부금은 전년도에 비해 오히려 7,6% 증가했다는 조사가 나왔다. 특히 기부자 숫자는 11.7%가 늘었다. 10달러, 20달러의 소액 기부가 많았고 난생 처음 기부해본다는 사람들도 많았다. 지난달 1일 기부화요일(Giving Tuesday)의 기부액(24.7억 달러) 역시 전년대비 25%가 늘었다.
내가 어려운 때 어려운 이웃이 더 눈에 들어오는 것은 우리가 함께 사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10달러, 20달러가 아쉬운 형편에 그 돈을 나누고 나면 그 몇 배의 행복감이 찾아 드는 것이 우리 인간이다.
참담한 상실의 한해를 딛고 맞은 새해, 더불어 사는 자세가 필요하다. 인간 종으로서 야생자연과 더불어, 인간 개인으로서 이웃과 더불어. 오래 잘 살려면 상생 외에 길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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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정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