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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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자연에게 배우다

2021-01-08 (금)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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밤새 내린 비로 온 세상이 촉촉해진 아침에 산책을 나섰다. 늘 하던 산책이 오늘은 왠지 다르게 느껴졌다. 바싹 말라 있던 낙엽은 밤새 내린 비로 인해 물을 잔뜩 머금고 있었고, 나뭇잎들은 영롱한 아침 이슬에 보석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나무들마다 내게 아침 인사를 건네는 듯 바람에 살랑이는 모습은 나를 웃음짓게 했다. 게다가 온통 흙만 보였던 사방에 파릇파릇 새싹이 고개를 내밀고 있어 세상이 온통 파랗게 보였다. 지난 겨울 같은 길을 걸으며 한 해를 돌아보고 새해를 생각하는 동안 조용하던 숲도 말없이 봄을 준비하고 있었나 보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온 세상이 코로나로 시끄러울 때에도 자연은 늘 한결같았다. 새 잎이 돋았고 무성한 잎으로 서늘한 그늘이 되어주었으며 사각사각 낙엽 밟는 소리를 즐기게 해 주었고, 죽은 듯 조용하던 겨울에도 밤새 내린 비에 기지개를 켜고 봄이라고, 또 시작이라고,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힘을 내라고 말하고 있었다. 그런 생각이 들자 자연이 주는 소중함을 너무 당연하게 여기며 잊고 지냈다는 반성이 되었다. 요즘처럼 사람을 만날 수도 없고 여행을 맘대로 할 수도 없을 때 주변에 이런 자연이 있음이 얼마나 고마운 일인데 미처 깨닫지 못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편리하다는 이유로 일회용품을 사용하고, 마스크도 아무데나 버리고 분리 수거도 제대로 하지 않아서 자연을 훼손하면서도 미안한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먼저 살다 간 우리 선조들이 물려주신 자연을 우리도 소중하게 관리해서 후손들에게 물려줘야 하는데,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우리의 이기심으로 얼마나 더럽히고 있는지 부끄러워졌다.

내가 어렸을 적엔 대문 밖에 나가 놀기도 하고 뒷동산을 마음껏 뛰어다니기도 했는데 요즘 아이들은 맘대로 나가도 안되고 말을 배우기 전부터 손 씻는 법과 마스크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 후손들에게 물려주어야 할 유산이 이런 것이어야 한다니 너무 안타깝지 않은가. 새해에는 자연을 지키기 위한 계획을 하나만이라도 세우면 어떨까. 조금은 번거롭지만 되도록 장바구니를 사용하고, 음식 쓰레기와 일반 쓰레기를 구분해서 버리는 일 등은 마음만 먹으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우리의 작은 실천으로 소중한 자연을 지킬 수 있다면 좀 더 나은 세상을 후손에게 물려줄 수 있지 않을까. 말없이 보여준 자연을 통해 소중한 수업을 받은 산책이었다.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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