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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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 그들의 이야기

2021-01-07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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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전 일이다. 금요일 저녁, 오렌지카운티의 샌타애나 경찰국 상황실로 갔다. 상황실장인 루테넌트를 만나 주의사항을 전달받고, 내민 종이에 사인도 했다. 순찰 도중 무슨 일이 생겨도(죽더라도-) 경찰 책임이 아님을 서약했다. 그후 동행 체험(ride along)에 따라 나섰다.

경찰 순찰차에서 본 ‘불금’은 또 다른 세상이었다. 많은 이들이 잠시 홀가분한 해방감에 젖게 되는 그 시간, 경찰은 가장 분주한 때였다. “삐-” 소리와 함께 순찰차의 무선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검문할 때 경찰은 정지 명령을 받은 운전자보다 더 긴장했다. 그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이다. 수배자인지, 정신은 온전한 지, 숨긴 마약은 없는지, 총을 갖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어떤 돌발 상황으로 발전할 지 예측할 수 없는 것이다. 운전석 뒤쪽에서 조심스럽게 접근하는 경관은 예외없이 권총 지갑의 단추를 풀고 손을 총 위에 두었다.


많은 경찰이 ‘카일 딘켈러 케이스’를 알고 있다. 조지아 주 셰리프 경관이었던 딘켈러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앓던 제대군인의 차를 세웠다가 피살됐다. 바디 캠에 찍힌 살해 장면은 참혹했다. 용의자는 총격을 받고 쓰러진 경관의 얼굴에 총을 겨누고 욕설과 함께 확인 사살까지 했다. 이 영상은 많은 경찰 아카데미에서 교재로 사용되고 있다.

현장에 출동할 때 경찰은 최악의 경우를 상정한다. ‘총을 가진 정신질환자’는 그중 하나다. 문제되는 경찰 폭력 중에는 이와 유사한 상황이 많다. 미국은 총이 있는 나라다. 딘켈러 케이스를 교육받고 현장에 투입되는 경관은 자신의 안전에 대한 강박감을 느끼게 된다. 경찰의 지시를 받게 되면 우선 ‘나는 안심해도 될 사람’이라는 메시지가 전달되도록 해야 한다. 서로를 위해 중요하다.

경찰은 참 잡다한 일로 불려 다녔다. 오라는 데는 많았으나 좋은 일로 부르는 곳은 없었다. 술 취한 남편과 악다구니 하는 아내-, 부부싸움은 경찰 앞에서도 계속됐다. 가정폭력 신고였지만 경찰이 부부싸움을 대신 해 줄 것을 바라는 것처럼 보였다.

다음날 새벽, 구치소를 둘러 보는 것으로 하루 밤 동행 체험은 끝났다. 각 지역 경찰과 고속도로 순찰대 등에서 연행된 사람들로 카운티 구치소의 새벽은 시끄럽고 분주했다. 술에 취해 제 정신이 아닌 사람이 많았다. 경찰은 궂은 직업이었다. 분노하고, 격앙되고, 폭력이 행사되는 갈등의 자리에만 불려 다녔다. 일반 시민들은 경찰의 이런 세계를 깜빡 잊고 있다. 예나 지금이나 달라지지 않았다.

경찰 동행 체험이 생각난 것은 계속되고 있는 BLM, ‘흑인 생명도 소중하다’는 캠페인 때문이다. 당연히 인종차별적인 경찰 폭력은 근절돼야 한다. 하지만 불똥은 엉뚱하게 튀고 있다. LA 한인타운을 관할하는 올림픽 경찰서 폐쇄 논의도 그중 하나다. BLM 시위에서는 경찰 예산을 깎자, 심지어 경찰을 없애자는 말도 나왔다. 과유불급, 너무 나가면 부작용이 있게 된다.

경찰은 이민자들이 직접 접하는 공권력이다. 자영업이 많은 한인들과는 접촉할 일이 많다. 원활한 언어 소통이 쉽지 않은데다, 때로 제스추어 하나가 엉뚱한 오해를 불러 오기도 한다. 현장에서 겪는 문화 차이는 적지 않다. 한인단체 한 곳을 갱단으로 분류해 놓은 경찰이 있었다. 그 경찰국 간부와 인터뷰를 하다 우연히 알았다.

그 단체를 갱으로 보는 이유를 물었다. 술집에서 신고가 들어와 출동하면 이 단체 회원이었다고 한다. 한 잔 하다가 싸우고, 그러면서 형님 동생- 또 화해하기도 하는 요란한 한국식 음주문화를 미국경찰이 알 리가 있나. 갱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마침 베트남 커뮤니티에선 유사 단체가 알려진 갱단이었다. 전직 월남 고위 인사가 배후에 있다는 말이 돌았다.

4.29 폭동이라는 엄청한 일을 겪고 난 후 밖으로 드러난 경찰과 한인 커뮤니티 간의 갈등사례는 많지 않다. 다행한 일이다. 우선 지역사회에 다가서려는 경찰의 부단한 노력이 평가돼야 한다고 본다. 한인들의 노력 또한 적지 않았다. 한 한인단체는 오랫동안 문화원에서 경찰을 대상으로 한국문화 교실을 열고 있다. 지역 한인들이 경찰과 유대를 갖는 모임이 활발한 곳도 있다.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에서 밥 한끼가 필요하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다.

LA 시의원 선거구가 한인타운을 갈가리 찢어 놓은 반면, 다행히 올림픽 경찰서는 대략 남북으로 10번 프리웨이-멜로스, 동서로 하일랜드-버질에 이르는 타운 전역를 관장하고 있다. 전에 윌셔와 램파트 두 경찰서 관할로 나눠져 있던 곳이다. 올림픽 경찰서 존속 노력이 진행중이다. 잘 이뤄지기를 바라지만 걱정은 1억5,000만달러든가, 워낙 뭉터기 돈을 경찰예산에서 잘라 냈다는 것이다. 예산은 없애고, 서비스는 전과 같이 이뤄져야 한다? 과도한 BLM이 불러 온 아이러니중 하나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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