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할머니(1)
2021-01-04 (월)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무조건적인 사랑’, 이런 것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정말 그런 것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예수를 믿으면서 이것도 내겐 참 큰 난제였다. 엄마를 기쁘게 하는 것이 내가 사는 목표였던 시절, 나는 해야 하는 숙제는 꼭 해야 하는 습관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용서와 무조건적인 사랑은 참 난감한 숙제였다. 나는 ‘하늘 아버지를 만나 땅의 아버지’를 용서하므로 제일 큰 바위가 빠져나가는 용서의 맛을 봤다.
그러다 ‘무조건적인 사랑’, 이것을 맛보는 사건이 생겼다. 세상에서 제일 좋은 냄새가 나는 손녀가 내 앞에 나타났다. 가장 보들보들한 작은 bundle of joy(사전에 ‘아기’ 라고 번역되어 있다)가 꼬물꼬물 내 앞에 나타났다. 어쩌다 눈을 뜨고 나와 마주치면 분명히 웃기까지 한다. 오줌을 싸면 축축하다고 운다. 똥을 싸면 맛있는 냄새를 피우며 기저귀 갈아달라고 운다. 배가 고프면 땅이 무너지는 소리를 내고 운다. 배가 부르면 금방 입을 벌리고 손을 떨구며 웃고 잔다. 세상에 이럴 수가! 마흔이 넘은 나의 딸과 아들도 분명히 이렇게 나서 자랐을텐데. 이건 무슨 조화인가.
세상에서 아기를 처음 보는 것 같이 신기하고 신난다. 무조건 무조건 이쁘다. 무엇이라도 해줄 수 있다. 잠을 안자고 보채도 이쁘고, 배가 고파도 힘이 나고, 지치고 피곤해도 보고 싶다. 보고 있다 고개를 돌려도 또 그립다. 이 아이가 어떤 아이가 될지도 모른다. 이 아이 자체가 그저 귀하고 내게 힘을 주고 웃음이 절로 나게 한다. 이 아이가 내게 해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어도 그저 다 주고 싶다. 조건이 없다. 그저 이 아이가 이 아이여서 소중하다. 사랑한다.
문득 믿을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사실로 받아들여진다. 내가 무엇이어서가 아니라 그저 나라서 사랑한다던 말. 내가 사랑받기 위해서 열심히 무엇인가를 해서가 아니라 그저 나라서 사랑한다는 말. 그저 가만히 있어도 내가 예뻐서 조용히 웃으신다는 말이. 나를 사랑할 뿐 아니라 나를 위해서 무엇이라도 할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다고. 그래서 죽었다고. “내가 너를 먼저 죽도록 사랑했다”는 이 계절에 오신 아기가 장성해서 33세가 되어 하던 말이 그대로 믿어졌다. ‘무조건적인 사랑’은 있다.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