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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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어 있으라

2021-01-03 (일) 김은영 / 기후 전문가,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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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 의식이 팽배한 요즘 ‘깨어 있으라’라는 말을 자주 듣게 된다. 성경에서는 예수님은 위기상황을 자주 경고하시며 위기는 아무도 모르게 도둑같이 오니 “자지 말고 깨어 있으라”고 제자들에게 당부하신다. 이말을 들을 때 마다 나는 ‘어떻게 계속 자지 않고 깨어 있음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그런데 이번 팬데믹의 집콕 생활을 하면서 이 말에 대한 좀 더 실질적인 뜻을 알게 되었다.

우리가 아는 세상이 사라진다. 기후변화로 야기된 재앙적 지형변화만을 생각해 왔다. 눈에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가 이 큰 동물의 사회를 골수까지 바꾸어 놓을 줄은 몰랐다. 피부의 촉감으로 나누는 따뜻한 체온과 숨소리 그리고 가슴과 가슴이 닿으면서 느껴지는 그 정감이 거세되었다. 인간적 접촉이 디지탈화 되고 인간 활동의 중심이 물리적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으로 옮겨가고 있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외로워져 간다. 물건을 사든, 전화를 하든, 처음 대하는 것은 녹음된 음성 아니면 인공지능이다. 하루에 접촉하는 것이 사람보다는 기계가 더 많다. 우리의 인성은 어디에 있는가? 내 안의 인성이 소리친다. 그 인성이라는 것을 만질 수 있다면 가슴에 꼭 안고 도망갈까봐 놓지 않겠다. 사람과 같이 울고, 웃고, 사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슬퍼하고, 이런것이 그립다. 그 인간성속에 나를 푹 담가놓고 싶다.

하나의 세상이 무너지고 다른 세상으로 재구성되는 과정에서는 파멸하는 자와 기회를 잡는 자로 나누인다. 우리 모두는 위기를 기회로 만드는 자가 되고 싶어 한다. 그런데 문제는 기회의 여신은 앞머리에만 머리카락이 있고 옆머리와 뒷머리는 대머리이다. 여신이 옆에 있어도 지나가는 것을 알아도 잡을 수 없다. 잡을 수 있는 머리카락이 앞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리 준비하고 있어야 하고 멀리서도 그 여신의 모습을 알아챌 수 있어야 한다. 그걸 알아채게 하기 위해서 바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깨어 있어라 ’고 당부하신 것 같다.


집콕생활을 하면서 없던 습관을 하나 만들었다. 아침에 깨었어도 침대에 한참 누워서 뭉개는 것이다. “우리는 왜 잠을 자야하는가?”를 읽고 하루에 8시간은 자보려는 노력의 일부이다. 수면과학의 세계적 권위자인 저자 매슈 워커는 ‘잠이 보약중의 보약’이라는 말을 평생을 바친 연구와 실험으로 증명해 준다.

우리 인생의 25-30%를 차지하는 잠을 우리는 무시해 왔다. 거의 모든 성공담에서 잠을 안자고 공부하고 일해서 성공했다는 것이 그 중심이다. 우리 사회는 잠을 무시하고 잠을 빼앗는 사회로 치달아 왔다. “잠은 건강을 돕는 무수한 혜택을 제공하며 24시간 되풀이되면서 당신을 회복시키는 처방전이다. 그러니 그 처방전을 받아라 (많은 이들은 받지 않는다)”라고 역설한다. 8시간의 잠시간을 지킴으로 면역성, 기억력, 홀몬조절, 창의성, 판단력등의 무수한 혜택을 설명하고 잠이야 말로 우리의 신체적 기능을 최고의 ‘깨어 있음’ 상태로 만들 수 있음을 내게 납득시켜 주었다.

잠이 신체적 ‘깨어 있음’의 조건인 것처럼 독서는 우리 정신의 ‘깨어있음’의 조건이라고 나는 말하고 싶다. 내가 속한 북클럽에서 미래세상을 엿보기 위하여 ‘2021세계미래보고서, 포스트 코로나 특별판’을 읽었다.

우리는 북클럽을 통하여 책을 읽고, 질문하고, 토의하고, 독서노트를 쓰면서 일상의 순간 순간에서 책에서 만난 천재들과 성현들의 조언을 떠 올릴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뇌신경망을 그들의 정신세계와 더 가깝게 조율해 갈 수 있다. 우리에겐 ‘깨어 있으라’는 말이 단순한 ‘개념’이 아니다. 그것은 나의 24시간속에 안배한 하나의 행동이다. 이 실천은 건강한 신체와 함께 기회의 여신을 알아차릴 수 있는 정신의 눈이다. 미래는 터미네이터처럼 갑자기 오는 것이 아니고 현재로부터 비롯되는 무언가이자 어느 정도는 내가 만들어 갈 수 있는 무언가인 것을 알기 때문이다.

<김은영 / 기후 전문가,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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