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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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내리사랑

2020-12-29 (화)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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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부터 문 앞 종소리가 울려 나가 보니 우체국 직원이 직접 저의 인증을 받기 위해 멀찌감치 떨어져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기다리고 기다리던 할아버지 할머니가 보내준 크리스마스 선물이 한국에서 도착한 것입니다. 아이들이 잠이 덜 깬 상태로 비몽사몽으로 내려와서 박스 주위로 모여 제 눈을 꿈뻑이며 쳐다봅니다. 그리고 두살 먹은 막둥이를 제외한 기센 두 누나들의 열띤 토론이 시작됐습니다. 한 놈은 빨리 열어 보자고 하고 또 다른 한 놈은 크리스마스 때까지 기다렸다가 열자고 하며 자기 의견들을 침 튀기며 내세웁니다.

결론은 아무래도 박스 안의 선물들이 무사히 이곳에 잘 도착했나 무척 궁금해하실 시부모님을 생각해서 바로 열기로 했습니다. 정말 할머니 할아버지 사랑이 가득 담긴 선물 박스였습니다. 손주들 한명 한명의 취향과 연령을 생각해서 고르고 고른 손길이라는 것이 제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그 정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아이들은 포장지를 무참히 뜯어서 자기 품안에 선물들을 담아 넣기 바쁩니다. 그 모습을 보니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뜨끔해집니다. 저도 제것은 저렇게 끔찍히 챙기면서 먼곳에서 늘 저희의 평안을 위해 기도해 주시는 부모님들을 잘 챙기며 살았나, 그 사랑을 얼마나 이해하며 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의 시부모님은 이번 연도에 은퇴를 하고 수원 한적한 곳에서 노후를 보내는데 구순이 훨씬 지난 시할머니, 그리고 시외할머니 두분을 모시고 사십니다. 더욱이 치매가 날로 심해지는 시할머니는 요양원을 얼마나 싫어하시냐면 본인이 요양원에 들어가는 날 농약을 먹고 죽겠노라고 하십니다. 그래서 저희 시부모님이 두 엄마를 돌보느라 은퇴가 은퇴가 아닌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솔직히 선물을 보내도 형편상 제가 보내는 것이 더 맞는데, 늘 자녀와 손주들을 먼저 생각해 주시는 그 내리사랑에 마음이 참 먹먹할 때가 있습니다. 저도 세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님께 대한 감사함은 점점 날로 커지는데 아직까지도 그 사랑을 따라갈 수가 없습니다. 부모의 자녀에 대한 사랑은 존엄한 듯합니다.

특별히 새해가 다가오는 12월의 마지막을 보낼 때는 한국에 계신 부모님들이 많이 생각이 납니다. 한해 한해 달라지는 부모님의 모습에 세월이 야속하고 항상 같이 있어드리지 못함에 늘 그렇듯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함께 몰려옵니다.

<김정원 (구세군 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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