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스마스 준비와 연말 모임으로 한참 분주해야할 시기가 조용한 틈을 타 2020년 한 해를 돌아보는 기회를 가졌다.
2020년에 떠오르는 사건은 코로나-19와 이로 인해 영향받았던 사건들 뿐이었다. 작년 말부터 우한 폐렴으로 시작되어 전세계로 급속히 퍼져나간 이 전염병은 호주의 대형 산불, 미국의 ‘Black lives matter 운동’, 미국 대선과 정권 변화를 다 제친 이번 해의 ‘하이라이트’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처음 팬데믹이 시작됐을 때는 그저 친구들과 식당이나 바에 갈수 없고, 재택 근무를 해야하고, 해외 여행을 가지 못하고, 연극이나 공연을 즐기지 못하는 정도의 ‘자유’의 억압에 대한 볼멘 불평이었다. 하지만 이젠 거의 1년이 다 되가며 점점 더 심해져가는 상황을 보니 감히 전쟁을 겪어보지 않은 나는 코로나-19를 전쟁에 비유한다. 하루에 몇 천명, 몇 만명이 죽어나온다는 뉴스와 병상이 모자란다는 것, 보고 싶은 사람을 못 보고, 경제는 엉망이 되어가고, 식당과 상점들은 문을 닫아 길은 적막하고 활기가 없는 싸늘한 거리는 영하를 오르내리는 날씨를 더 춥게 만든다. 병상이 없어 병원 문턱을 넘어보지도 못하고 숨지고, 제대로 된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냉동 트럭에 보관된다거나 길거리에 방치된다고 하는 코로나 사망자들이나 다리가 잘려 나가 피가 철철 흐르고, 머리에 붕대를 감고 수송되며 죽어가는 1차, 2차 세계대전의 병사들의 모습은 그다지 다르지 않다.
코로나-19과 싸워야하는 환자들, 이를 매일 진찰하고 치료해야하는 의료진, 일당으로 생활하는 노동자들이나 사회거리두기가 격상될 때마다 긴장해야하는 소상공인과 식당, 자영업하는 분들의 힘겨운 싸움이 여태까지는 먼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전쟁이었다고 느꼈다면, 이제는 지금 우리 눈 앞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불행 중 다행인 소식은 백신 개발이다.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긍정적인 움직임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백신 거론 중 가장 많이 따라다니는 단어는 아이러니하게도 ‘전쟁’이다. “전세계는 백신전쟁 중”, “백신전쟁에 참패한 정권” 등 여러 기사들의 백신 확보에 관한 성공이나 실패에 관해 논의가 전쟁으로 표현된다. 하지만 코로나-19와 힘든 전쟁을 치러왔는데 또 백신과의 전쟁을 치르면 안되겠다. 백신은 인류와 코로나-19간의 전쟁에서 코로나 방지와 퇴치를 위한 무기로서 인류는 똘똘 뭉쳐야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백신이란 조달 가능한 예산이나 자체 개발 능력, 또 각국의 외교력이나 국력, 의료시설완비등 이에 미치는 요소들이 수없이 많다. 하지만 한치 앞 정권의 인기를 위해 쓰이는 코로나 긴급재난 지원금의 용도 정도로 예산 수준을 잡아 우선순위를 흐려서는 안된다.
또한 부유한 나라들과 세계은행, WHO, UNHCR, UN 등 같은 국제기구들은 각자의 미션 중 코로나 퇴치를 우선 순위로 두고 백신 혜택을 받기 힘든 국가들에게 공평하게 보급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의료시설 완비와 자체 개발 능력을 키우도록 지원해야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같은 시국에선 국익과 자국민의 건강과 복지가 우선 중요하겠지만, 팬데믹을 겪으면서 인류는 하나라는 메시지가 더욱 강하게 와닿는다.
두 가지 갈림길에서는 현명하게 우열을 가려내고, 여러가지의 갈래길에서는 서열을 잘 파악하고 우선 순위를 잘 결정해 하나씩 해결해 나간다면 서로 백신 확보를 위해 ‘전쟁’을 벌이기보단 빠른 시일내로 예전 같은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길 기대한다. 우리가 평화를 기대하는 ‘평화주의자’들이어서가 아니라 코로나와의 전쟁에서 승리해 그저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은 ‘일상주의자’들이기 때문이다.
<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