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언 떠나는 계절이 왔다.
묵은 것을 털어내는 귀한 시간이기도 하지만 보낼 것을 보내야 하는 남은 자의 몫을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보내면서 우리는 곧바로 남은 우리를 챙긴다. 우리가 해야 할 일, 남은 시간의 조절, 남은 욕망의 해결 등은 우리를 자못 바쁘게 할 것이다.
생은 인간의 영위이다. 아무리 자연이 아름다운들 인간 눈에 들어오지 않는 자연을 논할 자 누가 있으며, 내 귀에 들리지 않는 노래 소리를 아름답다 말할 자 누가 있으랴.
하지만 눈이 뜨이지 않으면 볼 수가 없고 귀가 열리지 않으면 들을 수 없다.
보여줘도 못 보는 눈뜬장님의 세월과 들려줘도 못 들었던 무감(無感)의 시간을 어떻게 다 말 할 수 있을까마는 남은 시간이 귀할 수밖에 없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지나보니, 내 눈과 귀를 막은 것은 나를 둘러싼 이 세상의 허상이었다.
물론 때로는 내 안에 있는 물거품 같은 욕망과 착(着)의 기운이 내 입 밖으로 밀려나와 나를 당황케 한 적도 많았다. 이렇게 안팎의 헛것들이 나를 짓누르는 상황에서도 밀리지 않으려고 기를 쓰는 또 하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데에는 오래 걸리지 않았으나, 그 존재의 정의를 내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제 감히 말하건대, 그것은 각자의 안에 들어가 있는 바로 ‘하늘의 기운’ 이다. 문제는 그 기운을 빨리 감지하고 정의를 내려 내 몸과 마음에 뿌리를 박히게 해 주는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그것이 생의 시간을 헛되이 소모하지 않는 방법이 될 것이다.
인간에게 별리의 아픔은 안고 가야 하는 숙명이다. 같이 있을 때 비로소 인간은 안심하고 그 속에서 따로 숨을 쉬기도 한다. 따라서 부딪치는 세파로 인해 묻는 흙가루 들을 피해 가거나 겁내서는 방법이 없다. 하루의 일과 중에 몸과 마음을 씻어내는 시간이 필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 또한 덜어 내고픈 많은 이끼가 쌓여 있음을 느끼게 된다. 하지만 이끼 없이 바위만 덩그라니 있을 수는 없지 않는가?
평화로운 마음은 의외로 선과 악의 밸런스에 있었다. ‘선(善)’만 추구하려는 욕심은 내 몸을 비틀었고 경직 시켰다. 49의 악(惡)의 끈이 내 안에 존재함으로써 51의 선(善)이 이기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그 방황과 선택의 고민이 나를 성장 시켰다.
어느 날 지나간 작은 과오의 흔적들까지 안타깝게 뇌리에 남아 지울 수 없는 멍에로 나를 짓누를 때는, 차라리 무위(無爲)로 살 수 있었다면 하는 바램이 생기기도 한다.
너무 많은 노력은 작위(作爲)가 되어 나를 위선(僞善)케 하였기 때문이다.
나는 금년에 북가주 한국일보에 글을 올리는 영광을 누렸다. 어느 정도 묵어 있던 글 하나를 1월에 올리면서 남은 11개의 글 제목이 대충 떠올랐다. 영혼과 자연과 문학 뒤에 존재하는 인간의 향기를 전달하고 싶었고 그 향기에 몇 사람은 위로 받을 수 있기를 희망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했다.
나온 글보다도 글 쓰는 시간이 나를 더 다듬었고, 그 동안의 나의 글은 앞으로도 계속 나를 안고 가면서 나를 가르칠 것이다. 마지막 12월의 글 제목을 정해 놓은 것은 처음부터이다.
우리는 누구를 떠나보내면서 회한에 젖게 된다. 그것이 진한 인연의 배우자이거나 직계가족일 경우는 더욱 깊을 수밖에 없겠지만 또한 그것을 글로 담담히 표현해 내는 것은 쉽지 않았을 텐데. ‘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 은 문인 박완서 씨가 암으로 먼저 가신 남편 분의 이야기를 생활 단상으로 쓰신 수필 겸 단편이다. 평생의 인연과 사연들을 뒤로 두고 먼저 가신 분이나, 남아서 그 투병 시에 쓰던 모자를 바라보고 글을 쓰신 분에게나 독자로서 연민이 가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이제는 그 글을 쓰신 분도 또 작고를 하셨으니 그 분과의 작은 인연이 새삼스럽다.
어느 해 한국에 나갔을 때의 얘기이다.
워커힐 지나 아차산 기슭에 둥지를 튼 친구의 집을 가끔 들리게 된다. 그의 이웃에는 문인 박완서 씨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아침 출근길의 친구 차에 마침 치료를 받으러 가는 그 분이 동승하게 되었다. 의사, 친구, 환자로서의 세 사람이 같은 차로 동행하게 된 것이다. 나는 그때 소설가 ‘김훈’의 문학상 수상 선정의 말을 기억한다 말했고, 그 당시의 심사위원이었던 그분은 별 말이 없었다. ‘한국문학에 벼락처럼 쏟아진 축복’ 이라는 말은 그럼 누가 했을까? 나는 무언가 말을 걸어 그분의 말꼬를 트게 하고 싶었지만 만만치 않았다. 병원에 도착해서 웬 이유인지 친구는 나에게 그분의 진료를 부탁해 왔다. 물론 그분의 동의를 받은 것은 당연하다. 친구는 어시스트로 앉아 나를 도와주었고 그것이 그분이 받은 마지막 치료가 되었다는 말을 나중에 친구에게 들었다.
회전목마 같은 생의 유전은 우리로 하여금 이별과 죽음을 필연적으로 생각하게 한다.
갑자기 들이 닥치는 것 같지만 사실 어느 정도 예정되어 있는 것들이 대부분이다. 그래서 마음의 준비를 하고 다듬고 만들어 가야 할지 모른다.
그 누군가에게 남은 ‘여덟 개의 모자’ 는 삶의 인고의 흔적이자 추억이 되듯이 내 가슴에 남은 많은 울림의 자국들은 그 무언가로 남아 또다시 사람들의 회상이 되어 어느 날 이 허공을 훑고 날아 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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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영무 (치과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