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코로나 시대의 내로남불

2020-12-23 (수) 구자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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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을 줄인 ‘내로남불’이라는 말이 유행이다. 일상 속에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일반인들의 ‘내로남불’ 행위나 태도는 그러려니 지나갈 수 있겠지만, 높은 사회적 지위를 가진 공직자의 경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사회에 모범을 보여야 하는 공인들의 내로남불 행각은 질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유례없는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몇몇 공직자들의 처신이 문제가 됐다. 그간 캘리포니아의 코로나19 대처를 주도적으로 이끌어 오던 개빈 뉴섬 주지사는 지난 11월 드러난 내로남불 행태가 대중과 언론의 질타를 받고 정치적 타격을 입었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모이지 말라’고 연일 강조하면서 정작 자신은 나파밸리의 프렌치 런드리 식당에서 열린 호화 생일파티에 참석,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파티 참석자들과 가까이 둘러 앉아있는 사진이 공개됐다.

뉴섬 주지사는 “나의 행동은 코로나 방역과 관련해 내가 항상 설파해온 정신과 모순된다”라고 잘못을 인정했지만, 이 사건으로 기존에 진행되고 있던 주지사 리콜 청원 서명자가 급증하며 내년 주민소환 위기를 맞게 될 수도 있는 어려운 상황을 직면했다. 당시 주지사가 갔던 식당은 나파 카운티에 속해 있어 실내외 영업이 허용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대중이 공직자를 향해 높은 잣대를 요구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또 최근에는 쉴라 퀴엘 LA 카운티 수퍼바이저가 코로나19 재확산세로 식당 야외 패티오 식사 금지안에 찬성표를 던진 당일 밤 샌타모니카의 단골 레스토랑에 패티오 식사를 하러 간 사실이 알려져 여론의 뭇매를 맞은 사례도 있다.

코로나19 장기화에 엎친데 덮친 격으로 겨울 대유행까지 직면한 주민들은 이미 지칠대로 지쳐 있고, 최전방에서 싸우고 있는 의료진들은 정신적, 육체적 번아웃(소진) 상태에 도달한지 오래다. 눈에 보이지도 않는 미세 바이러스가 가져온 대혼란 상황 속에 공직자들은 떳떳한 롤 모델 역할을 해야 함을 보여주고 있다.

다행히도 2020년을 매듭짓는 12월, 마치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코로나19 백신 접종이 시작돼 이 길고 어두운 터널 끝에 한 줄기의 빛이 비추고 있지만 아직 긴장을 늦추기엔 이르다. 코로나와 관련해서는 모두 조심 또 조심, ‘내불남불’도 조심하는 자세가 필요한 시기가 아닐까.

<구자빈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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