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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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삼 남매

2020-12-18 (금)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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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삼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나 오빠와 여동생이 있다. 오빠와는 두 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지만 자라면서 오빠와 싸운 기억이 없다. 아주 어릴 적 사진에 보면 문간에 나를 앉혀놓고 오빠가 신발을 신겨주는 사진이 있는데 볼 때마다 마음이 따뜻해진다. 초등학교 3학년 때는 같은 반 남자 아이가 괴롭힌다고 하자 다음날 우리 반에 찾아와 나를 괴롭혔던 친구를 혼내 주었던 기억이 난다. 겨우 초등학교 4학년이었던 오빠가 어떻게 그런 용기를 냈을까? 직접 물어본 적은 없지만 여동생만 둘이 있었으니 누가 말하지 않아도 나름 책임감을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오빠는 늘 보이지 않게 동생들을 챙기며 그늘이 되어 주었다.

하지만 세 살 차이의 여동생과는 좀 달랐다. 당시엔 흔치 않게 부모님은 여동생만 유치원에 보내셨는데 예쁜 교복을 입고 유치원에 다니는 동생이 얼마나 부러웠는지 괜히 질투하고 미워했던 기억이 난다. 게다가 내가 봐도 동생은 나보다 훨씬 예뻤다. 그런 동생을 보며 막내만 예뻐한다고 부모님께 괜한 불평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자라면서는 한 방에서 공부하고 함께 자며 조잘대기도 하던 수많은 날들이 여자 형제들끼리만 누릴 수 있는 추억이 되었고 지금은 가장 친한 친구가 되었다. 오빠는 동부에서, 동생은 엘에이에서 살고 있는데 모두 미국에 사니 감사하지만 그래도 셋이 만나는 건 쉽지 않다.

그런데 올 초 부모님을 뵈러 오빠가 조카와 함께 깜짝 방문을 했다. 부모님을 뵐 겸 왔다가 큰 동생만 보고 가는 게 아쉬웠는지 막내가 보고 싶다는 오빠의 말에 동생도 바쁜 일을 미루고 제부와 함께 와서 삼 남매가 만났다. 부모님도 꿈만 같다며 말할 수 없이 기뻐하셨고, 불과 몇 일이었지만 참 행복한 시간이었다. 형제들을 생각하면 이 세상에 내가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그 존재만으로도 힘이 된다. 싸우고 미웠던 기억보다 늘 서로를 챙기고 양보한 기억만 있는 우리 삼 남매. 힘들 때 하소연도 하고 언제나 내 편이 되어주는 오빠와 동생. 지금도 서로를 위해 뭐든 주고 싶어하는 오빠와 동생. 이젠 돌아갈 수 없는 그 시절이, 한 해의 끝자락에서 더 많이 그립고 보고 싶다. 짧았지만 함께 했던 시간으로 위로를 삼으며 카드 대신 이렇게 인사를 해야 할 것 같다. “오빠 그리고 주연아, 많이 사랑해. 다시 만날 때까지 건강하길 바래.”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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