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아! 테스 형
2020-12-17 (목)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
무심코 플레이한 소셜미디어의 동영상에 원로가수들이 나온다. 어쩌다가 한바탕 턱 빠지게 웃는다는 가사의 첫 구절을 듣자마자 ‘테스 형이 소크라테스였어?’ 하며 나도 따라 크게 웃다가 이내 눈물을 찔끔거린다. 가수 송창식이 부른 나훈아의 테스 형 동영상이 끝나면 한복을 멋지게 차려입은 나훈아의 오리지널 노래가 연이어 재생된다. ‘아! 나 저 사람들이 좋아.’
어린 시절 음악실이라고 부르던 방에는 LP 판이 가득했다. 그 레코드판은 내 장난감이기도 했는데 심심하면 그것을 꺼내어 아버지가 하시던 것처럼 고운 천으로 닦아도 보고 그 시절 전축이라고 부르던 것을 멋대로 만지며 음악도 틀어보곤 했다. 얼리어답터이자 컬렉터였던 아버지는 음악을 참 좋아하셨는데 좋아하는 음악을 듣기 위해서 전 세계에 세대밖에 없다는 오디오를 구하는 것은 물론 진공관 앰프가 처음 나왔을 때는 새로운 오디오를 해외에서 어렵게 구해오시며 흥분에 겨워하셨다. 그러고 나면 내 머리에 커다란 헤드폰을 씌워주시면서 새로 장만한 스피커의 밸런스를 들어보라고 레코드판을 이리저리 바꿔가며 몇 날 며칠을 훈련 아닌 훈련을 시키셨다. 아버지가 소장하신 레코드판 대부분이 한국 가수들과 해외 팝 가수들이라는 것을 눈치챘을 때는 내가 십대 소녀가 되었을 때였다. 그 무렵 아버지는 매주 가요무대를 빼놓지 않고 보셨는데 늦은 밤 TV에서 김동건 앵커의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아빠는 뭘 그런 걸 봐’ 하며 내 방으로 들어가며 행여나 재미없는 올드한 가요가 들릴세라 문을 닫아버리곤 했다. 그럼 아버지는 ‘요즘 가수들은 멋을 몰라. 이 사람들이 진짜 가수야’ 하고 말씀하셨다.
영국 어느 연구 결과에 의하면 사람은 30살이 넘으면 새로운 음악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남성의 경우다. 여성의 경우는 조금 융통성이 있는데 40대 후반까지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인다고 한다. 어린 시절의 추억 때문인지, 아니면 아버지를 빼닮은 유전자 덕분인지, 연구처럼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음악을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까닭인지 알 수는 없지만, 해탈한 듯 초월한 듯 연륜이 느껴지는 그때 그 시절의 가수들 노래에 나의 40대 감성이 춤을 춘다.
“먼저 가본 저 세상 어떤가요 테스 형. 아빠, 언젠가 그날이 오면 거기서 오래된 LP 판의 지직거리는 소리와 함께 흘러나오는 옛날 가요 들으며 소주 한잔 같이해요.”
<손화영 (가야금 연주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