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가 중학교 때 옆동네에 장티부스가 발병한 적이 있다. 그게 순식간에 이웃동네들로 퍼져나갔다. 우리 동네도 예외는 아니었고, 옆집에서 놀다 돌아온 누나 때문인지 우리집도 부모님을 제외하고 4형제 자매가 차례로 전염되었다. 말 그대로 열병이다. 39도 고열로 2주간 반죽음이 되고 동네 학생들은 2주간 학교도 쉬어야 했다. 당시 들리던 이야기 중에 ‘미국’에서 무슨 약들이 와서 방역이 되었다고 했다. 광주 5.18때 광주시민들은 고립무원에서 오로지 뚫린 하늘밖에 바라볼 수가 없었다. 그리고 세계의 경찰이라고 하는‘ 미국’이 광주시민의 진실과 정의에 답해줄 것이라는 기대가 너무 컸던지 신군부를 방조, 묵인했다는 감정이 아직도 남아있다. 4,50년전 한국에서 느꼈던 필자의 미국에 대한 짧은 단상 두가지다. 그런 미국에 40대 후반이던 2002년 말에 이민 왔다.
2016년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1년간 34%의 참모들을 시도 때도 없이 일방 해고해 버렸다. 정무직들은 물론 각종 국가기밀과 대통령의 사생활을 다루는 정보통들까지 자고나면 열풍처럼 해고했다. 그 중에는 내각 서열 1위 틸러슨 국무를 위시해서 메티스와 에스퍼 국방, 볼튼 안보보좌관, 코미 FBI국장등도 있다. 가차가 없었다. 기준이나 절차 따위가 있을 리도 없다. ‘트럼프의 기분’만 있을 뿐이었다. 그것도 트윗으로 해고 통보를 해버렸다. 이런 일은 임기내내 이어졌다. 그리고 2020년 11월 국민들의 심판이 뒤따랐지만 아직도 버티고 있다. 그런 트럼프가 맞다고 하는 국민도 48%나 된다. 옳고 그름은 따지고 자시고 할것도 없다. 단지 미워하고 좋아하고만 난무한다. 공경하고 그리던 미국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달라져버린 곳이 지금의 미국이다.
코로나로 매일 2천여명이 죽어 나가는 데도 선거날까지도 코로나는 가짜라고 마스크를 벗고 활보하고 다녔다. 돈이 있어도 치료할 방법도, 병원도 충분치 않다. 골방에 들어가서 해열제로 버텨서 살면 다행이다. 같은 시각,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이 대통령이 임명한 검찰총장의 직속상관인 법무장관의 지시를 따르기는 커녕 그를 범죄자로 몰아서 온 가족까지 수사하는가 하면 후임장관에게도 똑같이 항명하느라 1년내내 온 나라가 시끄럽다. 심지어 임명권자가 있는 청와대를 수시로 압수수색 한다.
그 이유라는 것이 국가나 국민을 위하기보다는 특정집단인 검찰조직만을 위해서다. 반면에 자신과 가족들에 대해서는 한없이 너그럽다. 백악관을 수시로 압수수색하는 것과 비교해 보자. 미국민들과 한국민들은 그 두 사람의 행동을 물끄러미 쳐다볼 수밖에 없다. 미국의 대통령같은 행동을 한국은 검찰총장이 하고 있다.
필자처럼 가족, 친척, 친구 하나 없이 40후반에 미국에 이민오는 사람들의 이민 결심은 남다르다. 먹고 살지 못해서 이민왔다기 보다는 사회적인 이유가 월등하다. 한국의 교육, 부동산박탈감, 정치사회적 편견과 차별, 정의구현에 대한 좌절감 등이 그 이유다. 요즈음 한인 동포 사회는 젊을 때 왔다가 은퇴하고나면 한국으로 되돌아가는 소위 역이민이 많다. 그동안의 한국과 미국의 의료, 복지, 정치, 사회의 변화와 역전현상이 갈수록 뚜렷해지고 있다. 그도 이번 코로나 사태로 확연히 드러났다.
한국이 자랑하는 전세계 최고의 의료보험제도는 노년의 삶의 질을 가르는 중요한 척도다. 거기에 노인 요양원의 시설이나 노년연금제도의 개선 등도 한 몫 하고 있다. 치통은 하필 치과가 문닫는 토요일 오후부터 생긴다. 코골이가 심한 사람이 하필 먼저 잠든다. 시험문제는 하필 공부하지 않는 곳에서 출제된다. 하필 내가 주식을 사면 떨어지고 팔면 오른다. 하필이면 시집간 날 등창 난다. 1949년 미국의 항공엔지니어 머피가 실험을 하다가‘ 잘못될 가능성이 있는 것은 꼭 잘못된다’고 말한 것에서 유래된 ‘머피의 법칙’(murphy’ law)이 그것이다.
하필(何必)이라는 말이 바로 그것이다. 고생고생해서 살만한가 하고 허리를 펴봤더니 떠나온 한국이 오히려 정치 사회적으로는 천국이 되어있다. 나돌아 다니는 말 중에는 불안과 우울이 갈수록 심해지는 현대인들에게는 자기최면, 자기긍정이니, 합리화, 감사인플레로 넘쳐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나이들어서 되돌아갈 마음이 있는 것은 꼭 수구초심만은 아니다. 한국과 미국간에 이런 상태의 정치발전과 사회, 시민의식이 10여년만 지속된다면 나의 인생은 그야말로‘ 잃어버린 30년’이 되어버릴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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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창구 / 사람사는 세상 워싱턴 메릴랜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