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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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프의 시간여행 26.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1)

2020-12-14 (월)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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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빠, 사랑해, 책임질 수 있어?”

제프의 시간여행 26.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1)
제프의 시간여행 26. 시계 이야기 #20: 고장난 시계(1)

유서 깊은 Gallaudet University 교정. 대학 창시자이신 Gallaudet씨가 어린 여 농아를 품에 감싸고 있는 동상이 참으로 뜻 깊다.


# 성탄절에 떠난 여인
1982년 눈 내리던 성탄절 시즌에 다운타운 Woodward & Lothrop과 Garfinkel’s 그리고 Hecht에는 쇼핑 인파로 붐볐다. 그 고급 상점들 앞에서는 한인 노점상들이 겨울철 마후라와 털모자들을 열심히 팔았고, 후미진 골목에는 흑인들이 지나치는 사람들 눈치를 보며 입고 있던 오버코트를 벌리고 그 안에는 코트 안감에 수십 점의 짝퉁 시계들이 핀에 꽂혀 있었다. 그렇게 구입한 싸구려 짝퉁 시계들은 오래 가지 못하고 고장 났다. 같은 장소에서 장사를 해도 이렇듯 달랐다.

총각 시절 미국에서 여러 다른 인종과 연애했던 나는 한국여성과는 아무런 이성 교제 없이 살았다. 그랬던 내가 이제 이 나이에 한국 여성에 의해 성공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그렇다. 성공한 삶이란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사랑 받고 사는 삶이다. 한 바퀴 긴 여정을 다녀온 기분이다. 그래서 나에게는 ‘시간 여행’이란 제목 나름 의미가 있다. 그렇다면 나는 총각 시절 어떤 여성들과 교제했을까? 그 이야기를 하겠다.

# ‘백마’ 타보았다고 자랑하던 친구
7080시절 DC 다운타운은 홍등가 천지였다. 당시 젊은 남자들끼리 모이면 ‘백마’ ‘흑마’ 운운하며 영웅담을 떠벌리던 시절이 있었다. 그런데 백마를 탔다며 자랑하던 친구 치고 잘난 친구 하나 없었다. 여성들을 정복해야 하는 존재 그리고 타 인종을 인간이 아닌 동물에 비유한 것에서 우리들의 편견과 오만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속물이었다.


# 흑인 벙어리였던 내 여친
82년 DC 국회의사당 근처 ‘로터리 마켓’에서 일할 당시 Gallaudet University(세계에서 유일한 농아 종합대학) 재학 중이던 흑인 여학생과 만나 연애를 하기 시작했다. 사실 가게 손님이었던 그녀를 좋아하며 치근덕거리던 친구는 따로 있었다.

당시 강도 사건이 빈번해서 가게에는 비번이던 경찰이 상주하고 있었다. ‘Terry’라는 이름의 흑인 경찰관은 잘생긴 친구였고 매너도 좋았다. 그러나 ‘목련’꽃 같은 그녀는 ‘Terry’에게 눈길 한번 주지 않았다. 가을비 오던 날 그녀가 가게 안으로 들어왔다. ‘Terry’가 나보고 한번 시도해보라고 부추겼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녀가 농아(deaf)인지 모르고 있었다. 다른 흑인들과 달리 조용히 살 물건만 계산대 위에 올려놓고 말없이 계산하고 나가는 그녀가 참한 처녀로만 생각했었다. 농아라는 사실을 안 그 순간 그녀의 장애가 마치 흑진주같이 그녀를 더욱 빛내 주는 듯 보였다.

‘Terry’가 자기 주머니에서 펜을 뽑아주며 나를 재촉했다. 자신이 실패한 연애 사업을 동양 친구가 성공 가능한지 보고 싶었던 모양이다. 계산을 끝낸 그녀에게 접근하여 작은 쪽지에 그녀의 이름과 전화번호를 물어보았다.

# Black Magnolia(흑 목련)에게 건넨 12송이 장미
그녀는 순순히 쪽지에 적어 주며 내 두 눈을 바라보며 수줍게 웃었다. 검은 그녀의 눈이 외롭고 깊은 바다에 닿고자 해도 당도할 수 없는 멀고도 먼 밤하늘 같았다. 한 손에 우산을 다른 손에 장본 물건을 간결하게 들고 똑바라지게 걸어가는 그녀의 뒷모습이 그녀의 모든 것을 대변해주었다.
전화번호는 얻었지만 누구하고 대화를 해야 하는지 막막했다. 다음날 용기를 내어 전화하니 그녀 어머니가 받으셨다. ‘Jeff’라 말하고 그녀를 찾으니 어머니가 반갑게 웃으며 자신에게 말하라고 하셨다. 가게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만나고 싶어서 전화했다고 하자 그러면 집으로 오라고 하셨다.

금요일 저녁 그녀 집으로 찾아가기로 했다. 가슴이 쿵쿵 뛰었다. 들뜬 마음으로 일을 마치고 펜 에비뉴 선상에 있던 꽃가게에서 핑크 장미 12송이를 손에 들고 그녀 집으로 달려갔다. 그녀 집은 Lincoln Park 근처의 벽돌 타운 하우스였다. 앞문을 열어 주시던 어머니는 첫눈에 보아도 인텔리였고 아버지는 연방 공무원이셨다.
마트에서 일하는 동양 청년이지만 깨끗한 타이에 장미꽃을 손에 들고 온 것이 마음에 드셨는지 객실(parlor)로 안내해 주셨고 소파에 곱게 앉아있다 나를 맞이한 그녀는 파스텔 칼라 드레스를 예쁘게 차려 입어 고상하며 아름다웠다. 이층 발코니가 있던 그녀의 방은 RCA TV와 작은 침대가 있는 간결한 처녀 방이었다. 수화를 모르던 나는 대화를 모두 종이에 적어서 했고 불편했지만 젊은 우리 둘만의 시간이 마냥 즐거웠다.

# 깊은 사랑
어머니가 금방 오븐에서 구운 초콜릿 칩 쿠키와 음료수를 가져다 주셨고 우리는 뒷마당이 내려다보이는 발코니로 나가 저녁 하늘을 즐겼다. 다음 데이트는 그녀의 학교 교정에서였다. 플로리다 애비뉴 선상에 있는 고풍스런 19세기 교정은 성역(sanctuary)같았다.
음성이 소실된 강의실과 운동장은 나에게 엄청난 충격을 안겨주었다. 영어가 서툴러서, 이민자라서 등의 변명을 들이댔던 내 자신이 참으로 못나 보였다. 그녀에 비해 나의 핸디캡은 잽도 안됐다.

추수 감사절 때 용기 내어 한국 친구 몇 명에게 그녀를 공개했지만 그들의 반응은 기대한 그대로 편견뿐이었다. 성탄을 앞둔 어느 날 그녀와 같이 라슬린에 있는 Holiday Inn에 갔다. 호텔방으로 그녀는 순순히 따라 들어왔다. 그리고 홀로 샤워를 하고 큰 타월을 허리에 걸치고 나왔다. 그 모습이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과 같아서 숨이 막힐 정도였다.
둘이 무슨 짓을 했더라도 용서받을 젊은 나이였다. 그녀가 타월을 걷어내며 침대에 앉았다. 순간 뜨거운 키스가 오갔다. 옷을 벗고 있는 나에게 그녀가 무엇인가를 적어 나에게 건넸다. 나는 흥분이 목젖까지 올라온 상태였다. 그런데 그 쪽지에 이렇게 쓰여 있었다. “I love you; do you love me?” 아--- 그 말의 뜻은 무엇인가? 그녀가 한국여자였으면 아마 이런 뜻 아니었을까? “오빠, 사랑해, 책임질 수 있어?”


나는 분명 그녀를 정말 좋아했었다. 그러나 욕정을 채우기 위해 거짓 사랑을 고백할 수는 없었다. 특히 그녀에게 그럴 수 없었다. 숨가쁘게 벗고 있던 옷을 다시 주섬주섬 입었다. 그 내 모습이 그녀에게 큰 실망이었는지 두 검은 눈에 눈물이 고였다. 그러나 내가 제거(neuter) 안된 강아지에 불과했다면 그녀는 심장이 사자였다.
우리는 아무 일 없이 호텔을 나왔다. 그녀의 집에 그녀를 내려주는데 그녀의 어머니가 현관(Porch) 앞에 나와서 ‘Jeff’ 들어오라며 손을 흔들어 주었다. 그렇게 보았던 그녀의 뒷모습과 어머니의 손짓이 지금도 눈에 선하고 가슴 저리다.

# 구원
젊은 시절 나는 꿈에 부풀어 살았다. 그리고 나의 미래에 신의 자비로움만 있으리라 믿었다. 그러나 내면의 오만이 순수함을 지웠고 자만이 모든 꿈을 날려보냈다. 그 중심에 박애보다는 차별, 굴절된 정의 의식이 있었다.
나에게 ‘사랑’을 물었던 그녀. 흑인이었기에 그녀와의 ‘사랑’을 포기했던 나. 농아였기에 ‘용기’를 상실했던 나와 달리 그녀는 빛나는 ‘사랑’을 이루고 용기 있게 답하는 삶을 살았다 믿는다. 이미 운명을 달리 하셨을 수도 있는 그녀의 부모님에게 신의 은총을 기원하며 모든 독자 분들 ‘메리 크리스마스!’

<다음에 계속>
(jahn8118@gmail.com)

<Jeff Ah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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