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번데기와 나비(1)
2020-12-14 (월)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나는 사건을 비교적 잘 기억하는데, 어느 해, 어느 날, 이런 것을 분명하게 기억하지 못한다. 그래서 오늘의 이야기도 아이들이 중학교 다닐 때, 어렸을 때, 어느 해로 시작한다. 그런데 이번엔 어떤 날이었는지를 기억한다. 아주 어렵게 얻은 휴가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원하던 미국의 독립기념일 7월 4일이 낀 주였다.
오랫만에 남편과 아이 둘이랑 캐나다 부차트 가든(Butchart Gardens)으로 가족여행을 떠났다. 캐나다 빅토리아섬(Victoria Island)에 있는 이 정원은 부차트 가족이 개인 정원을 일반에 공개하면서 유명해졌고, 세계 3대 아름다운 정원으로 꼽힌다. 지금은 부차트 부부의 4대째 되는 손녀가 주인이다.
‘부차트 정원’으로 가는 길에, 하이웨이에 요란하게 내걸린 광고를 보고 ‘나비의 성(?)’이라는 곳에 들렸다. 장소 이름은 정확하지 않은데 하여튼 수천 수만의 나비를 한 곳에 모아놓은 곳이었다. 들어서면서 우선 공기가 몹시 축축했던 것이 지금도 기억이 난다. 사람들이 꽤 많았고, 아이들이 나비 잡는다고 뛰어다니기도 했다. 여기저기 신기한 종류의 많은 나비를 보다가 나는 문득 나무둥지들에 붙어 있는, 나비가 허물을 벗고 나간 번데기들이 눈에 들어왔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양한 나비들을 예쁘다고 신기해 하면서 나무둥지에 남아 붙어 있는 시커먼 번데기를 보는 이들은 아무도 없는 듯했다. 그 순간 마음이 툭 떨어졌다. 그 번데기들이 불쌍하고 처량하며 슬프고 외로워 보였다. 그리곤 마음이 내려앉은 그 빈자리를 알 수 없는 슬픔이 가득 채워댔다. 번데기를 향한 나의 오지랖이었다.
그곳을 나와 캐나다 부차트 정원을 다니며 구경을 하는 내내 마음이 무거웠다. 그 멋진 정원을 돌아보며 왜 그렇게 번데기들이 자꾸 눈에 슬프게 밟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모처럼만에 간 가족여행이였는데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았다. 아이들 눈치 못채게 했지만 우리 부부가 아주 사소한 것에도 의견 차를 보이며 서로 부딪치고 유난히도 팅팅거렸던 것만 기억에 남아 있다. 이제 와보니 그렇게 무거웠던 건 번데기를 향한 나의 슬픈 오지랖(?) 때문이었나 싶다.
여행에서 돌아온 후로도 오랫동안 나비를 보면 그 슬픈(?) 번데기가 먼저 생각이 나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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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 (가정사역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