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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그사람

2020-12-11 (금)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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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는 박원순 서울특별시장의 죽음을 애도하고 슬퍼하는 사람들과 성희롱을 당했다고 고소한 A라는 전직 비서의 고통을 풀어 주어야 한다는 사람들의 모습이 대비되어 보통 사람들은 어느 쪽에 줄을 서야 하는지 혼란스럽다. 성경에 “비판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고 했다. 인간이란 남의 잘못을 지적하고 욕하기는 쉽다. 정치인들은 더욱더 그렇다.

한평생을 살다 보면 매 순간 정직하게 살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 하루하루를 모두 이어 놓으면 곡선일 수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직선일 사람이 몇이나 될까? 나는 박원순의 죽음에 대하여 옹호하거나 두둔할 생각은 없다. 그의 죽음에 대한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다. 다만 그가 이전에는 바르고 정의롭게 살아 온 사람이라는 것만 기억 날 뿐이다. 어느 임금이 아무리 성군일지라도 절반은 충신이고 절반은 역적이라고 했다. 그게 인간 사회다.

박원순은 1955년 1월 19일(음) 경상남도 창영군 장마면 장가리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밀양 박씨 아버지 박길보와 어머니 노을석의 2남 5녀 중 여섯째인데 차남이다. 부모는 유난히 아들에 대한 애착이 깊어 딸들도 머리가 좋고 영특했지만 출가외인이라며 고등교육의 기회를 주지 않았고, 형과 박원순만 서울로 유학 시켜 대학까지 마치게 했다. 훗날 형은 대학교수가 되었고 동생은 변호사가 되어 민권 변호사로 활동하다가 서울특별시장이 되었다. 박원순은 고향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경기고등학교에 들어갔다. 당시 경기고의 입학정원은 720명이었는데 480명의 경기중 졸업생들이 본교 진학하게 되어 있어 입학시험을 치르고 들어간 사람은 240명뿐이었다. 경기중 출신이 아닌 농촌 중졸이 경기고에 진학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이었던가를 말해 주고 있다.


그 후 서울대학교에 입학하고 3개월째 되던 봄에 학생운동을 하다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구속되어 감옥에 갔다. 박정희 정권의 가혹한 처벌로 제적된 학생들은 복학을 불허해 출소해도 갈 곳이 없었다. 법무사 시험을 거쳐 잠시 강원도 정선의 등기소 소장으로 근무하다 서울로 돌아왔다. 서울대 복학 통지를 받았으나 서울대로 돌아가지 않고, 경기고 동창인 친구이자 단국대 장충식 총장의 아들 장호성의 권유로 단국대에 입학하고 졸업하여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검사시보 시절 대구지검에서 사법연수원 동기생인 대구 출신 이원동 판사의 소개로 강난희를 만나 결혼했다. 국문학을 전공하는 대학교 4학년 여학생이었다. 문재인 대통령과도 사법연수원 동기생임이 이번 사건의 뉴스로 알려지기도 했다.

사람을 잡아다가 벌주는 일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며 검사를 그만두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서 2년, 영국 정경대학에서 1년, 유학을 마치고 돌아와 민권 변호사로 활동하면서 우리나라 최초의 성희롱 사건인 <서울대 우 조교 사건>과 세상을 떠들썩 하게 했던, 지금은 민주당 21대 국회의원이 된 권인숙 <부천 성 고문 사건>의 변론에도 참여했다. 당시 한국 사회 분위기는 성희롱(Sexual harassment)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없었고, 범죄라고 여기지도 않을 때였다. 가해자는 죄의식을 느끼지 않았고, 성희롱을 문제 삼을 경우 피해자인 여성을 도리어 “꼬리를 쳤다”는 식으로 누명을 씌우는 시대였다.

그로부터 10년쯤 지난 후, 서지현이라는 현직 검사가 자신도 성희롱을 당했다며 나서자 한국 사회에도 미투(Me too)의 물결이 거세게 일어났다. 세상은 변했다. 여비서 성희롱 문제로 안희정 충남지사는 감옥에 갔고, 오거돈 부산시장은 시장직을 내려놓고 감옥 갈 준비를 하고 있으며, 박원순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 역시 김부선이란 여배우와의 스캔들로 한때 온 나라를 시끄럽게 했다. 미국에 살지만 우리는 코리안 아메리칸이다. 조국, 고국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인간에게 도덕과 양심은 무엇이며 본능적 욕구는 어떻게 다스려야 할까? 오늘 날은 집 밖에만 나가면 노출이 심한 여성들의 패션이 남자의 본능적 욕구를 자극하는 정글을 이루고 있다. 눈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난감할 때도 많다. 한국사회의 미투 폭풍이 휩쓸고 지나간 자리에 얼마나 많은 남자가 쓰러졌는가? 남자라는 존재, 나이를 먹으면 고독하고 슬픈 존재가 된다. 남자란 문고리 잡을 힘만 있으면 여자를 그리워한다는 말이 있는데 아내는 갱년기가 오면 남편을 멀리한다. 특히 고위 공직에 있는 남자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 oblige)” 높은 신분과 명예에 상응하는 책임과 의무를 다하여야 한다는 뜻이다. 더욱더 높은 도덕성을 요구받는다. 과중한 업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중년 이후의 인간적 외로움을 슬기롭게 해결 할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일까?

박원순의 삶을 돌아보니, 최영미 시인의 <선운사에서>라는 시가 생각난다. “꽃이 / 피는 건 힘들어도 / 지는 건 잠깐이더군 / 골고루 쳐다볼 틈 없이 / 님 한번 생각할 틈 없이 / 아주 잠깐이더군 / 그대가 처음 / 내 속에 피어날 때처럼 / 잊는 것 또한 그렇게 / 순간이면 좋겠네 / 멀리서 웃는 그대여 / 산 넘어가는 그대여 / 꽃이 지는 건 쉬워도 잊는 건 한참이더군 / 영영 한참이더군” 박원순 서울특별시장님, 부디 하늘나라에서는 외롭지 않은 사람으로 사시옵소서.

<제이슨 최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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