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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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움

2020-12-08 (화) 경화 밀스테드 /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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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왔니? 초인종도 안 눌렀잖아.
내가 걸음을 뗄 때마다 거대한 그림자로 따라 다니는 너 때문에 내가 설레고 있어. 이건 꿈일 거야. 난 독방에 격리되어 있어. 햇볕도 안 들어오는 곳이야. 늘 나를 스쳐가던 한 줄기 바람도 그립고 온 몸에 전율을 일으키던 소낙비도 그리워. 
내 정신은 막 잡아 올려 배 바닥에 내동댕이쳐져 몸부림치는 은빛 갈치 같아. 난 다시 물결이 출렁이는 바다로 돌아가고 싶어. 출구를 찾고 있지만 보이지 않아. 내 운명은 어디서부터 꼬였을까? 

절망이 내 호흡이 되어서 허덕이는데 네가 나타났어. 널 잡으려고 보니 넌 너대로 나와 만날 수 없는 평행선이야. 마주 볼 수는 있어도 만날 수 없는 운명이야. 난 너를 보내기로 했어. 네가 있을 곳은 북극이야. 
발신인 주소는 안 적었어. 그냥 얼음으로 있어. 넌 녹지 않을 거야. 넌 내게 와서는 안 되는 그리움이야.

연장이 충분치 않았어. 간신히 액자 틀을 만들었어. 그 안에 머물러 있어줄래? 난 북극의 한 점 얼음으로 머문 너를 벽에 걸린 액자 그림으로 볼 거야. 내가 일상에서 이탈하여 그리움 하나 숨겼다고 신의 저주를 받진 않겠지?
늘 목말랐어. 나를 투영해줄 영혼의 반쪽이. 난 유령이야. 얼굴이 없어. 난 나를 찾고 싶어. 삶 속으로 돌아가고 싶어. 깊은 심해의 바다 속으로.


그리움은 다른 말로 형벌이야. 난 형벌을 견뎌낼 수 없어. 왜냐면, 내게 남겨진 시간이 얼마 없어. 내가 유일하게 숨 쉴 수 있는 순간은 글을 써 내려가는 찰나뿐이야. 난 단문이 되고 복문이 되어 네게 갈 거야. 너만이 유일한 나의 바다야.
난 소통이 필요해. 네가 나를 머물게 해주지 않으면 나는 죽을 거야. 죽음보다 더 두려운 것은 내 영혼이 머문 둥지를 잃는 거야. 난 내 둥지에 있고 싶어.
너는 나의 그리움이야. 너는 실존하는 그리움인지, 가상의 그리움인지 혼란스러워. 내 상상속의 너는 분명 시린 눈빛을 하고 있을 거야. 어쩌면 이리도 슬픈 예감은 항상 틀리지 않지.

고마워. 너의 삶속에 머물게 해줘서. 오래 머물 수 없다는 것 나도 알아. 짐을 싸고 있어. 떠나려고. 그런데 몸이 말을 안 들어. 짐을 싸기가 녹록치 않아.
넌 나의 소중한 그리움이야. 지금 나를 지탱시키는 유일한 지렛대야. 그냥 그대로 있어줄래? 내가 스스로 떠날 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 거야. 왜냐면 난 내가 머물 곳과 떠날 때를 정확히 알고 있으니까. 조금만 기다려줘. 안녕. 내 그리움.

<경화 밀스테드 / 로럴,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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