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크리스마스 트리
2020-12-08 (화)
김정원 (구세군 사관)
한국에 계신 시부모님의 부탁으로 서류 몇 장 인증받을 것이 있어 샌프란시스코 총영사관에 오랜만에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큰아이 온라인 수업이 끝나자마자 아이들을 차에 태워 오랜만에 집 밖으로 나갔더니 좋아서 노래를 부릅니다. 그러다가 막내는 떠난 지 얼마 안돼 바로 낮잠에 드셨고 둘째는 엄청 재잘거리다가 영사관 근처에 도착하니 때맞춰 잠이 들었습니다.
영사관에 들어가 오랜만에 손글씨로 서류 작성을 하고 또 직원분의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고쳐 쓰고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지나 저녁 5시 가까이 되었습니다. 급히 차 안에 돌아와 보니 세 아이는 좁은 차 안에서 꼼지락거리며 놀고 있고 남편은 어둑해질려는 저녁, 약간의 해질녁 빛을 받으며 재빠르게 막내 기저귀를 갈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언제 먹다 버린 껌인지 막내아이 등과 옷에 깊게 달라붙은 초록색 껌딱지를 둘이 힘을 합쳐 열심히 떼내어 보다가 지쳐서 아이를 그냥 차에 앉혔습니다. 기대하고 기대하던 휴가인데 저희의 첫날 휴가는 영사관 앞에서 아이의 등에 붙은 껌딱지를 떼다가 마무리되는 듯했습니다. 휴가인데도 갈 곳도 마땅히 없고 특별한 것도 만들기가 어려운 시기인 것 같습니다.
그렇게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는데 남편이 영사관 근처 꼬불꼬불한 수국길로 유명한 롬바르트가 꼭대기로 드라이브를 시켜 주었습니다. 와! 저녁을 배경으로 다양한 빛깔의 조명과 창문 옆에 아름답게 장식되어 반짝이는 크리스마스 트리들이 저희들 눈에 한아름 들어왔습니다. 예전처럼 밖에 나와 대화를 하거나 모임을 가질 수는 없지만 창문 너머로 크리스마스 트리와 함께 서로의 얼굴들이 보였습니다. 저녁 식탁이 보이고 아이들이 보이고 스포츠 중계방송 화면이 보입니다. 마치 텅텅 비어 버린 듯한 샌프란시코에 집집마다 켜 놓은 크리스마스 트리 빛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확인하는 수신호 같았습니다. ‘나 잘 살고 있다고, 당신은 괜찮냐고’라고 묻는.
한순간 마음이 뭉클했습니다. 아마도 매일 들려오는 안좋은 뉴스에, 또 거리두기에 많이 지쳐 있었나 봅니다. 집집마다 세워둔 크리스마스 트리가 이렇게 저의 마음에 위로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래서 돌아오는 길에 이번 휴가 프로젝트로 아이들과 돈을 들여서라도 예쁜 크리스마스 트리를 만들기로 다짐을 해봅니다. 이 겨울 나의 이웃의 누군가가 불빛을 보고 위로받기를 바라며…
<김정원 (구세군 사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