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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루이스 사회

2020-12-07 (월)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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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전부터 아내를 따라 온라인 독서모임에 매주 참여하고 있다. ‘죽은 시인의 사회’ 영화 제목을 패러디한 ‘죽은 루이스 사회’로 명명한 이 독서모임을 통해 나니아 연대기를 비롯해 여러 책을 집필한C.S. 루이스의 저서들을 같이 읽고, 각자의 생각들을 나누고 있다.

C.S. 루이스의 비소설들은 내가 평소 잘 생각해 보지 않은 추상적이지만 삶의 근간을 이루는 주요 생각들과 연결된 이야기들을 많이 담고 있는 것 같다.

이번주 새롭게 시작한 ‘고통의 문제’에서는 도덕, 고통 혹은 두려움 등 여러가지 이야기로 되었다. ‘죽은 루이스 사회’ 구성원들과 대화를 나누다 기독교가 다른 종교와 다른 부분이 성경에 쓰여진 역사적인 사건들을 믿는가 유무에 달려있다는 대목을 통해 그간 가지고 있던 생각들을 같이 논의해 볼 수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된 이후, 특히 트럼프의 트윗이나 말들에 대해 언론사들에서 사실관계를 확인한다는 ‘팩트체크’가 매우 보편화 되었다. 그런데 이런 팩트체크가 요새는 꼭 트럼프의 말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좌와 우가, 서로가 서로의 논리에 대응하는 하나의 수단처럼 되어버린 것 같다는 느낌을 지을 수가 없다.

내가 지지하는 혹은 속한 그룹의 생각이나 행동들은 괜찮고, 나와 다른 쪽은 잘못하고 안된다는 일종의 ‘내로남불’이 심해지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언론사에서 발행하는 팩트체크의 기본 전제는 보편타당한 진리 혹은 사실이 있다는 것인데, 요새는 무엇이 진리인지 사실인지 정말 구분하기가 점점 어려워지는 것 같은게, 이러한 ‘내로남불’적인 접근 때문이 아닌가 싶다.

올해 초 부터 큰 반향을 일으키며 넷플릭스를 통해 개봉한 ‘소셜 딜레마’(Social Dilemma) 다큐멘터리에서는 유튜브와 페이스북 같은 SNS 들이 어떻게 개개인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매우 심각하게 다루었다.

이런 SNS 서비스들은 AI에 기반해서 각자 개인의 취향에 맞춰진 유사한 콘텐츠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는데 이러한 알고리즘이 개개인의 생각뿐 아니라 사회를 극도로 양극화시키고 있다고 결론 내리고 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어 사회가 더 양극화 되었다기 보다는 실리콘 밸리의 많은 창업/혁신가들의 의도치 않은 행동들이 십년 이상 쌓이다 보니 사회 구성원간 대화가 단절되고, 본인이 관심 가지는 혹은 비슷한 생각들에만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는데 크게 일조하게 된 것이 더 맞는 해석인 것 같다.

코로나 팬데믹 사태로 사람 간 대면이 더욱 줄어들고, 온라인으로 많은 모임들이 이루어지다 보니 내가 속해 있는 사회 버블 곧 생각의 버블 밖의 생각에 대해 들을 기회는 더욱 줄어들고, 남의 생각은 미친 생각 잘못된 생각이라고 치부해 버리는 모습을 나에게서도 쉽게 발견한다.


SNS를 만든 사람들조차 이윤을 극대화하려 도입한 AI가 사회의 분열을 조장하고자 이런 일에 뛰어든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 사회의 현상을 짚어보면, 자기와 조금이라도 생각이 다르면 아무리 팩트체크라는 나름 객관적인 방법으로 설명을 시도해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사회가 되었다.

21세기 유튜브와 페이스북이 물리적 광장을 가상의 공간으로 옮겨 놓았지만, 온라인 세상 뿐 아니라 물리적인 공간에서도 SNS 를 통해 증폭된 양극단의 생각들이 현실 공간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제 미국과 한국 그리고 세계 곳곳에서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 간 물리적인 충돌 영상들 또한 너무 많이 접해서 그런지 코로나에 대해 무감각해 지듯 양극화의 심각성에 대한 경각심이 매우 낮아진 것 같다.

‘죽은 루이스 사회’의 대화를 통해 우리가 세상을 다 이해하고 논하기는 어렵겠지만, 그래도 집에서 이런 것들을 함께 생각해 볼 친구들이 있어 감사하다.

<성이호성 국제기구 개발담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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