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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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골동품녀(2)

2020-12-07 (월)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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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렇게 말없이 겁없고 당당한 그녀를 참 좋아했다. 그녀는 보이는 대로가 바로 그녀였다. 내가 먼저 가까워지려고 다가가고 내가 전화하고 내가 따라다녔다. 참 웃겼다.

그녀는 남편과 이혼서류를 접수하고 아프리카행 비행기를 탔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크다는 리사이클링 회사를 같이 시작하고 키운 남편에게 다른 여자가 생겨서였다고 나중에 말해주었다.

그녀는 다섯살 때 아버지에 의해 고아원에 버려졌지만 후에 들려온 소식에 따르면 부모는 다 잘살고 계시다는 이야기였단다. 18살이 되어 보육원에서 나온 후, 밥을 먹는 날보다 굶는 날이 더 많았던 날들에도 그녀는 부모를 찾아갈 생각은 추호도 없었고 그리움은 더더구나 없었다고 했다. 오히려 아프리카 우간다에 있는 고아원 아이들을 그리워하며 매해 찾아다니고 지극 정성이었다.


그러던 그녀가 어느 해 한국을 다녀온다고 나갔다. 그립지도 않고 사랑이 느껴지지도 않는다는 어머니가 많이 편찮으셔서였다. 그리곤 자주 한국을 드나들었다. 한국에 작은 아파트를 사서 어머니를 모셔두고 왔었단다. 그녀가 보육원에 버려졌을 때, 그녀의 엄마도 아버지에게 같이 버려졌었단다. 그리곤 마음의 병으로 평생을 아프셨단다. 그리워하던 딸을 만났을 때도 지나온 세월을 마음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정도였었단다.

그렇게 몇 년 째 한국을 오가던 어느 해 한밤중에, 그 친구의 어머니는 돌아가셨다. 얼마 되지 않는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며 그녀는 낡은 찬송가를 발견했단다. 미국에 가져가야 하나 어쩌나 생각하며 무심코 들춰본 찬송가 갈피 속에 네댓살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의 사진이 한 장 끼어 있더란다. 처음에 못알아 보았는데, 그 찬송가의 글자가 다 흐릿하여 볼 수가 없을 정도여서 이상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단다. 본인도 못 알아본 그녀의 사진이었다. 그동안 살아온 사연을 나눌 수도 없었던 그 친구 어머니의 평생이 그 한 페이지에 다 있었다.

그런 내 친구는 단풍구경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로 평생 그녀의 반석이었던 하나님과 결국 사랑해버린 엄마한테 가버렸다. 단풍이 이렇게 아름다운 계절이 되면 나는 그 친구가 많이 그립다. 아주 많이.

<노신영 (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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