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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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포로 빠졌다 ‘울음이 타는’ 노을바다를 만났다

2020-12-04 (금) 사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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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박자박 소웁탐방 - 사천시 삼천포 섬과 바다

죽방렴이 설치된 삼천포 저도(오른쪽)와 마도 사이 바다에 노을이 번지고 있다. 구름이 짙은 날이었지만 사천에서 최고로 치는‘실안낙조’의 여운을 느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어떤 이는 삼천포의 대표 시인 박재삼의‘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비유하기도 한다. 역시‘아’ 다르고‘어’ 다르다. 그냥‘삼천포로 빠졌다’고 하면 될 걸, 하필이면 앞머리에‘잘 나가다가’라는 단서를 달았다. 뭔가 잘못됐다는 부정적 뉘앙스가 확 풍긴다. 왜 이런 표현이 생겼는지에 대해 여러 설이 있다.

진주에서 멀쩡히 장사 잘하던 상인이 누군가로부터 삼천포가 더 낫다는 말을 듣고 자리를 옮겼다가 공을 쳤다는 이야기, 어느 고위 공무원을 태운 운전기사가 순천으로 가려다 길을 잘못 들어 삼천포까지 가는 바람에 아주 혼이 났다는 이야기, 휴가를 마치고 복귀하려던 진해 해군이 삼랑진역에서 마산행 열차로 갈아타야 하는데 깜빡 졸다가 삼천포역(진주~삼천포 구간 철로는 현재 없어진 상태)까지 갔다는 이야기 등이 전해지는데, 어느 하나 딱 부러지는 건 없다. 한 가지는 분명하다. 경남 서부지역 간선도로는 모두 진주에서 교차되는데, 순천이나 통영으로 갈 때 길을 까딱 잘못 잡으면 진주 서남쪽 삼천포로 빠지게 된다.

■삼천포로 빠지면 눈부신 쪽빛 바다가 펼쳐진다


그 때문일까. 이제 삼천포라는 이름은 공식 행정지명에서 모두 사라졌다. 1995년 사천군과 통합하며 삼천포시는 사천시의 일부가 됐다. 시청은 사천읍과의 중간지점인 용현면에 새로 지었다. 이례적으로 면단위에 시청이 들어선 것인데, 균형발전이라는 대외적 명분 외에 지역 내 자존심 싸움이 그만큼 컸다는 뜻이기도 하다. 관광으로만 보면 삼천포만큼 자원이 집중된 곳도 드물다. 길을 잘못 들어 ‘빠지는’ 곳이 아니라 내비게이션에 목적지로 찍고 일부러 찾아가야 할 곳이다.

대표적인 곳이 사천바다케이블카로 연결된 각산(408m) 전망대다. 사천의 진산으로 불리는 와룡산에서 볼 때 바닷가에 뿔처럼 오뚝하게 솟은 봉우리라는 뜻이다. 정상 부근에 설치한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면 삼천포에서 남해군으로 연결되는 4개의 해상교량(삼천포대교ㆍ초양대교ㆍ늑도대교ㆍ창선대교)을 중심으로 쪽빛 바다에 무수한 섬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다. 거제 지심도에서 여수 오동도까지 이어지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다. 지리산에 이어 1968년 국내 두 번째로 지정된 국립공원이자 최초의 해상국립공원이다.

전망대 아래쪽에 백제 무왕 때 세웠다는 각산산성이 자리하고, 뒤편에는 봉화대가 남아 있다. 섬들 사이 바닷길이 오래전부터 해상교역의 중심이자 군사적 요충지였음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교량으로 연결된 늑도에서는 1979년부터 2001년까지 3차례 발굴 조사에서 패총과 무덤, 주거지 흔적과 함께 청동기에서 삼한시대로 이어지는 유물이 다량 출토됐다. 중국계와 일본계 토기, 중국 한나라 때 사용한 화폐인 변량전과 오수전, 거울 등 1만3,000여점의 유물은 이곳이 고대에 한ㆍ중ㆍ일 동아시아 해상교역의 거점이었음을 보여 준다. 안타깝게도 늑도에서 출토된 유물은 모두 타 지역 박물관으로 옮겨지고, 현장에는 유적지 표지판만 세워져 있다.

바로 옆 마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 국내에서 최초로 전어를 진상한 곳으로 기록돼 있다. 흔히 구워 먹는 가을 전어를 최고로 알지만, 지역에서는 뼈째 회로 먹는 초여름 전어가 더 고소하다고 입을 모은다. 마도 어부들이 전어잡이용 그물에 갈물을 먹이는 작업을 할 때 부르던 ‘갈방아소리’는 경상남도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돼 있다. 갈은 면사 그물을 오래 사용하기 위해 그물에 막을 입히는 재료를 말한다. 처음에는 풋감 즙을 사용했지만 대형 그물에 전부 먹이기는 부족해 이웃 하동에서 소나무 껍질을 구해 사용했다. 갈물을 내기 위해 큰 절구통에 넣고 메를 든 장정 4∼6명이 서너 시간 찧었다고 하는데, 그 고단함을 잊게 해 주는 노래가 바로 갈방아소리다.

삼천포 앞바다는 예나 지금이나 풍성한 어장이다. 동해와 서해안의 항구는 이른 아침에만 어선들로 붐비지만, 삼천포 앞바다에는 섬들 사이를 오가는 어선의 궤적이 하루 종일 끊이지 않는다. 좁은 물목에 대나무를 세우고 그물을 쳐서 물고기를 잡는 죽방렴 또한 삼천포 바다의 상징물이다. 물살이 빠른 바다에 커다란 빨래집게 모양으로 설치한 그물에 남해의 대표적 어종인 멸치를 비롯해 꽃게 갈치 오징어 꼴뚜기 등 온갖 해산물이 걸려 든다. 죽방렴은 현재 사천 해안에 21개, 남해 지족면에 28개가 설치돼 있다.

삼천포 죽방렴은 갈방아소리의 본고장 마도와 닥나무가 많았다는 저도 사이에 여러 개가 분포하는데, 각산 아래 실안동 해안도로에서 바라보면 오래된 과거와 마주한 듯 아득하다. 특히 해질녘 섬들 사이로 바다와 하늘이 동시에 붉게 물드는 ‘실안낙조’는 사천에서 으뜸으로 꼽는 풍광이다.

늑도와 함께 교량으로 연결된 초양도는 조선시대에 군마기지였다고 전해진다. 지금은 서쪽 산비탈에 빨간 지붕으로 단장한 민가가 옹기종기 모여 있고, 뒤편 언덕에는 아담한 공원이 조성돼 있다. 보는 방향에 따라 각산과 늑도, 삼천포대교를 배경으로 펼쳐진다. 덩치는 작지만 이국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섬이다.


■시처럼 음악처럼… 소담스런 포구와 공원

각산에서 시내 쪽으로 이동하면 삼천포의 소소한 매력이 숨겨져 있다. 거창하지도 크게 이름난 곳도 아니지만 나름의 아름다움을 간직한 삼천포의 보물이다. 우선 케이블카 정류장에서 멀지 않은 곳에 대방진굴항이 있다. 포구에서 연결된 물길이 굴을 파놓은 것처럼 마을 안쪽으로 휘어져 있다. 숨겨 놓은 옹달샘 같이 아담한 포구에 소형 고깃배 서너 척이 그림처럼 정박해 있다. 제방을 따라 수령이 200년 가까이 된 팽나무와 소나무가 숲을 이룬 채 가지를 늘어뜨리고 있어 오래된 원림 못지않게 멋스럽다.

대방진은 고려시대부터 왜구의 침범과 노략질을 막기 위해 조성한 수군 진지였다. 조선 세종 때 군영이 인근 고성으로 옮겨가 소규모 선진(船鎭)으로 남았다가, 순조 때인 1820년경 굴항 조성과 함께 부활했다. 굴항 축조에는 진주목 관하 73개면에서 수천 명의 주민이 동원됐다고 한다. 당시 대방진에는 전함 2척과 300명의 수군이 상주했고, 주변에는 수군장의 집무실인 동헌과 관사,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곡식 2만섬을 저장할 수 있는 창고도 있었다. 이 정도면 일대가 해군기지나 마찬가지인데, 지금은 고만고만한 민가에 둘러싸인 굴항만 돋보인다.

인근 청널공원은 최근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인생사진 명소로 등장하는 곳이다. 특별할 것 없는 동네 공원인데, 풍차전망대를 세우고 야자수를 심어 이국적인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풍차전망대에 오르면 정면으로는 섬과 어우러진 바다가, 왼편으로는 삼천포항이 정겹게 내려다보인다. 삼천포항은 일대에서 가장 큰 어항이다. 남해군이 목적지인 여행객 중에서도 뭘 좀 아는 사람은 이곳 삼천포항 용궁수산시장에서 횟감을 구입해 간다.

바닷가에서 언덕으로 오르면 아담한 동백숲이다. 남부와 중부지역 간 기온 차는 겨울에 도드라진다. 붉은 꽃송이가 군데군데 환하게 피어 있다. ‘아직’이라 해야 할지, ‘벌써’라고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 동백숲을 지나면 삼천포를 대표하는 시인 박재삼(1933~1997) 문학관이 있다. 전통 서정시의 계보를 잇는다고 평가받는 시인이다. 어떤 이는 그의 대표작 ‘울음이 타는 가을 강’에 삼천포의 깊고 그윽한 풍경이 숨어 있다고 해석한다.

‘… 해질녘 울음이 타는 가을강을 보것네 / 저것 봐, 저것 봐, … 이제는 미칠 일 하나로 바다에 다 와 가는 / 소리 죽은 가을강을 처음 보것네’. 눈이 멀 정도로 아름답다는 실안해안도로의 노을이 자꾸 시어에 겹친다.

<사천=글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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