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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교] 미국 생활

2020-12-04 (금) 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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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 시간 미국에서 사는 나에게는 미국은 이념이나 학문적 관심의 대상이 아니라 실존적인 고민이었다. 미국은 나에게 무엇이고, 나는 미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에 대한 물음은 미국에 사는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사색의 질문이기도 하다.

미국 내 한국인들 사이에 이민을 단적으로 표현하는 말이 있다.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 인 반면에 미국은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것이다. 한국에서의 삶이 역동적이면서 특유의 활기를 느낄 수 있는데 반해, 미국에서의 삶은 제반 여건이 좋으면서도 단조롭다는 점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미국 이민이 `재미도 없고 천국에서 사는 것도 아니다`라는 말에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있다. 왜 그럴까?

많은 한인 이민자들은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 미국에 왔다. 어쩌면 그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해서 ‘아메리칸 드림’의 신화를 산 것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지금은 현실을 냉정하게 볼 필요가 있다고 여기는 것 같다. 지금 한국은 옛날 이민 오던 시절과는 차원이 많이 달라졌다. 미국 못지않게 잘살고 있는 것 같다. 더 좋은 회사와 사회에서 인정받고 일하지 못하고 자녀들도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할 바에야 굳이 한국을 떠날 이유가 없어졌다. 실제로 이민 오는 한국인의 추세는 10년째 감소 추세이다.


잊을 만 하면 일어나는 ‘묻지마 총격사건’ 에서 보듯이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은 사실 심각한 부작용이 많은 사회이다. 특히 요즈음은 팬데믹 사태를 겪으면서 많은 한인이 미국을 떠나 한국으로 돌아가는 것을 심각하게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상대적으로 잘 통제된 한국 방역 시스템도 좋아 보이고 그동안 열심히 일해왔지만, 이민자들의 한계와 설움을 느끼면서 고국이 그리워 지는 듯 하다

사실 이 미국이 아무리 세계 초유의 경제력과 군사력이 있다 해도 일반 서민이 살기에는 힘든 나라이다. 하루하루가 힘들고 밑도 끝도 없이 일해야 하는 참 자본주의 모습이기도 하다. 저축을 할 수 없는 사회구조이기 전에 아예 저축되지 않는 경제구조를 갖고 있는 곳이 이 미국이다. 한 연구자료에 의하면 미국인들의 저축률은 5.5%이며 예금계좌에 천 불도 없는 사람들이 무려 62%이다. 43%의 노동인구는 준비해놓은 노후자금이 아예 없다. 충격적인 것은 연 소득이 10만 불 -15만 불 미만의 고소득자들도 저축계좌에 천 불이 없는 경우가 44%나 된다는 점이다. 벌은 돈들은 빚을 갚거나 주거비와 교통비로 바로 써야 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그런 것이다. 내야될 이자는 복리로 계산되고 카드가 한번 연체되기 시작하면 후덜덜해 진다.

이민자의 비즈니스란 대게 주인의 노동력을 기본으로 삼아 돌아간다. 때문에 본인뿐 아니라 온가족이 사업에 들러붙어 온종일 박스를 나르고 손님들과 실랑이를 해야 한다. 운 좋게 사업이 성공하더라도 고된 삶은 거의 필수다. 이런 피곤한 삶 속에서 부부가 같이 일하다 보면 매일 싸울 수도 있고 또 자녀에게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도 없기에 자녀가 탈선할 수도 있다. 어지간히 결속력이 강한 가족도 이런 스트레스를 견디지 못하고 무너져 내린다.

성공해 보이는 이민 생활에서도 가정은 해체될 수 있다. 이민2세대에 이르면 한국어 문화와 언어 교감이 옅어지면서 3세대 이후에는 거의 남지 않는다. 자녀들은 부모를 미국문화에 동화하지 못한 고루한 사람으로 치부하고 설령 부모와 속 깊은 대화를 하고 싶어도 한국어 실력이 안 되어 그마저 힘들다. 미국은 땅덩이도 넓어서 출가한 자식은 일 년에 몇 번 보기도 힘들어 자연히 교류가 뜸해지면서 남이 될 확률이 높다.

직장 안에의 생활도 전문가가 아니면 살아남기 어려운 구조로 되어 있다. 직원들의 성취도를 성과 위주로 엄밀히 평가하여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직원은 수시로 정리된다. 보상만큼이나 확실한 성과를 요구하는 것이다. 한국에서처럼 적당히 개겨도 반 영구적인 직장이 보장되는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 한국에서 칼퇴근 하는 미국의 직장 문화를 부러워하는 경우가 있지만 일하는 시간 동안 노동의 밀도는 한국보다 훨씬 높다. 이러한 미국식 고효율 시스템은 직장인에게는 나름대로 적지 않은 스트레스를 유발한다.

성공적인 이민이라 해도 그 성공의 최대치는 높지 않다. 많은 경우 문화와 언어 장벽 때문에 아무리 잘 풀려도 소시민 이상을 넘보기가 쉽지 않다. 조금 더 큰 집에서 조금 더 좋은 자동차를 굴리는 수준이 삶의 전부일 수 있다. 이렇게 살면서 인생의 시야는 아주 좁아져, 직장과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 미국 사회와는 정신적으로 분리된다. 자신의 삶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미국 소식은 보고 듣지도 않고, 우리가 살고 있지도 않은 한국 소식만 붙들고 늘어지게 된다. 과연 이런 삶이 괜찮은지 깊이 생각해 볼 때가 왔다. 그리고 과연 우리 이민자들이 계속, 이 미국 땅에 이렇게 살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지 더 심각히 고민해 보아야 할 때다.

그러나 혹시 미국에 사는 이유의 정당성이 필요한 분들을 위해 ‘왜 미국이 아직은 좋은 나라인지’ 나름대로 논리적인 도움을 몇 가지 제시해 보고자 한다.


첫째: 미국은 그래도 법과 정의가 아직은 살아있다. 의원도 시장도 판사도, 부자도 법을 어기면 합당한 처벌을 받는 아직은 정의로운 사회이다.

둘째: 미국은 개인의 의지가 존중받고 공과 사가 철저히 분리된다. 회사내의 인간관계가 직장 밖으로 연결되지 않기 때문에 각종 모임과 약속에 시달리지 않아도 되므로 가족 중심적이 될 수밖에 없다.

셋째: 다양성이다. 미국은 다양한 이민자들이 세운 나라이기에 그들의 다양한 배경과 특성이 고려되고 각자의 장점을 인정받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시된다.

넷째: 미국은 더불어 살려고 애쓰는 나라이다. 피부색이 달라도 영어가 서툴어도 얼마든지 와서 살 수 있다. 어수룩한 사람도 살 수 있는 곳이다. 이 정도나마 일구고 사는 우리 한인들이 그 증거다.

다섯째: 미국은 약자를 배려하는 나라다. 어린이와 여자 그리고 노인들을 위해 기꺼이 양보한다. 강자만 살 수 있는 나라는 결코 아니다. 나이가 들어서도 당당히 일할 수 있고, 자동차가 펑크가 나면 꼭 도울 사람이 나타나는 곳이 이 미국이다.

여섯째: 남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나라이다. 마음껏 웃어도 헤프다고 흉보지 않으며 친절함이 오버해도 굳이 오해를 사지 않는 나라이다. 외모에 신경 쓰지 않고 아무런 꾸밈없이 살아도 누가 뭐라 하지 않으며 굳이 비싼 옷이나 가방, 자동차로 과시할 필요가 없다.

일곱째: 세금만이라도 성실히 납부했다면 낸 세금에 비례한 소셜연금을 은퇴 후에 반드시 받는다. 적어도 아직 30년 정도는 더…

이 정도면 아직은 우리가 이 미국 땅에 살만한 충분한 이유가 되지 않을까? 그런데 한 가지 더, 우리가 모두 인식해야 할 일이 있을 법 하다. 그것은 우리가 그동안 미국 내의 문화에 적응하는 문제를 너무 가볍게 여기면서 부의 축적에만 신경을 써왔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이에 대한 생각을 바꿀 때가 온 것이다.

실지로 어떤 면에서는 한국이 미국보다 더 살기 좋을 수 있고 단지 금전적 성공과 자녀 교육을 위해 이민을 선택하는 시기는 이제는 확실히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우리의 선택으로 온 이 미국 땅에서 미국인으로 살아가려는 인식을 가슴속에 확실히 하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 예를 들어, 각종 사회단체에 참가하고, 기고 혹은 시민 활동을 통해 우리가 사는 이 사회의 방향을 정하는 데 참여할 방도를 함께 찾아봐야 하지 않을까?

<정에스라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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