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례없이 힘들었던 한해도 깊어가는 가을 정취와 함께 한 달을 앞두고 있다. 옛날 보다 훨씬 살기 좋은 세상이라고는 하지만 왠지 일상에서는 늘 긴장하며 살아야 하는 것 같다.
전에는 집 전화 하나였지만 지금은 식구 수대로 각자 요술쟁이 같은 전화 하나씩은 가장 큰 보물단지처럼 중차대하게 여기며 살고 있다.
그러나 수시로 오는 전화나 문자 카톡, 그 이외의 신호에 마음 놓고 답을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전화벨이 올려도 누구인가 상대방의 신원을 알아야 마음 놓고 받는 세상이 되었다. 전화 소리에 아무런 부담 없이 “여보세요”하며 받았던 그 때가 먹구름 속에 쏟아지던 장대비가 그치면 맑게 갠 청 하늘에 햇살이 비치는 것처럼 맑은 생각으로 수화기를 들고 통화를 하던 때가 훨씬 좋다.
함부로 버리는 쓸 때 없는 종이들도 분쇄기에 콩가루처럼 싹 부셔서 버려야 되는 세상이다. 모두가 적이고 모두가 경계해야 할 대상이다.
이처럼 편하지 않은 생활 속에 불청객 코로나 19라고 불리는 역병이 또 한쪽으로 찾아와 이 지구상의 인류를 힘들게 하고 있다. 그로 인해 침묵 아닌 침묵 속에 입 가리개, 다시 말하면 마스크라는 또 하나의 생활필수품이 한층 더 깊은 침묵의 시간으로 우리들을 몰아간다.
가슴이 답답하고 그냥 온몸이 다 답답하다. 거기다 세계의 대통령이라 해도 지나친 표현이 아닌 미국의 대통령 선거가 치러지는 한해에 몇 년 동안 치를 법한 크고 작은 일들이 앞다투어가며 일어나는 한해였다. 몇 달을 용광로처럼 타오르는 무서운 산불에, 허리케인에, 지진에, 한 달을 두고 내리는 폭우에 인간의 힘에 한계를 느끼는 시간인 것 같았다.
많은 사람들은 그렇게 힘들어 하고 있는데, 현역 대통령이라고 대통령의 권한을 아무 때나 마구 쓰려고 하는 사고뭉치의 철없는 아이처럼 떠들어 대는 대통령 때문에 이 일을 어쩌나 하며 답답한 가슴을 어찌할 바를 모르며 지내야만 하는 한해였다.
천지신명의 도우심이었는지 희망을 기대해 보는 미국의 46대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기우제를 치러야 할 만큼 왕 가뭄에 흠뻑 내리는 빗줄기같이 꿀맛 같은 상쾌함이다. 그런데 패자가 승자에게 승복해야 하는 전통을 깨어가며 쓸데없는 객기를 부리고 있다. 누구에게나 인간은 살아온 연륜이라는 것이 있다. 70회가 훨씬 넘은 숫자의 생일 케익을 먹었을 텐데 얼마만큼이나 더 촛불을 끄고 케익을 드셔야 철이 나려는지.
새로움이란 언제나 우리에게 희망을 안겨 준다. 새로운 그날엔 백악관의 새 주인과 모든 사람에게 더 큰 기쁨과 행복을 주시리라 희망을 가지고 믿는다. 새로움, 믿음, 희망. 언제 들어도 기분 좋은 말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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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현 / 베데스다,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