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진 공연 시기의 사진. 킬린’ 축구 대표 선수로 휴스턴에서 개최된 전국체육대회에 참석했다. 검은 옷차림이 ‘금강산’ 식당 아들. 그리고 옆의 나팔 바지(Bell Bottom) 복장이 이채롭다(누구라고 말은 못하지만).
# 수혜자와 기증자
내가 착용한 첫 국산 시계는 카시오(Casio)이고 지금도 소장하고 있다. 시어스(Sears) 백화점에서 시계 뒷면에 ‘Made in Korea’를 확인하고는 거침없이 곧바로 구입했다. 그때는 금성 TV가 백화점 지하실 구석에 볼품없이 진열 되어 있었고 소니(Sony) 천하였다. 그만큼 미국에서 국산이 귀했었다.
그렇게 살아온 미국에서 우리 이민 역사의 최고 수혜자(beneficiary)들이 새로 자라는 이민 2세, 3세들이라면 과연 기증자(benefactor)들은 누구였을까? 유명 정치인들? 탁월한 사업가들? 나는 생각이 다르다. 가장 힘든 결정을 하고 이국땅에 와서 열심히 일하고 한국 가족들을 초청하여 이곳에 정착하도록 도왔던 사람들. 그러나 조용히 살아가는 국제결혼 여성들이 나는 존경스럽다.
한국전쟁 이후 낙후한 환경에서 미군과 만나 이국 만리 먼 땅으로 이주하여 온갖 일들을 하며 귀한 달러를 한국으로 송금하고 부모 형제를 초청해서 이 땅에 정착하도록 물심양면으로 도왔던 그 분들이 우리 세대의 애국자들이며 우리 사회의 기증자들 중 하나라는 점을 의심치 않는다.
# 금강산 식당
요즘 ‘트롯 신’이란 프로그램에서 남진 선생의 출연을 보면서 그때 그 일이 떠오른다. 1979 텍사스의 외진 도시 킬린(Killeen)은 인구가 몇 천도 안 되는 작은 마을이었다. 그러나 주위에 세계에서 가장 큰 군 기지가 있었기에 미군 병사와 사는 한국여성들이 있었다.
그들이 모여 작은 한인교회가 하나 생겼다. 나는 그 마을에 있던 ‘금강산’이란 식당에 자주 갔고 주인 아들과 친하게 지냈다. 그의 사촌 중에 대학에 다니는 ‘긴 머리 김’이란 친구가 있었다. 총각이던 ‘긴 머리 김’은 키가 크고 잘생긴, 그러나 공부보다는 머리단장에 시간을 많이 소비하는 겉멋이 많이 든 그런 친구였다. 어느 날 그가 자신에게 여친이 생겼다며 자랑을 늘어놓았다.
# 긴 머리 김의 여친
텍사스 남자의 심볼은 카우보이모자와 픽업트럭이다. 텍사스에서는 그 어느 스포츠 차도 선호도에서 픽업트럭을 따라 갈 수 없다. 그 ‘긴 머리 김’에게도 요란스러운 픽업트럭이 있었다. 그가 어느 주말 그 여친을 대동하고 우리 모임에 나타난 것이다. 큰 호숫가에서 우리는 쿠어스(Coors) 맥주와 말보로(Marlboro) 담배를 벗 삼아 무료함을 달래고 있었다.
그녀는 첫인상이 가수 정훈희 씨를 닮은 가늘고 세련된 모습이었지만 얼굴에 우수가 깃들어 있었다. 내 차 라디오에서 윌리 넬슨(Willie Nelson)의 음악이 조용히 흘러 나왔다. 나는 그녀에게 어떤 음악을 선호하냐? 고 물었다. 그녀의 답변이 뜻밖이었다. 그녀가 좋아하는 밴드는 ACDC. 생긴 거 하고 너무 다른 답변에 ‘긴 머리 김’을 쳐다보았다. 그러고 보니 둘은 안 어울리는 커플이었다.
# 텍사스에서의 남진 공연
얼마 후, ‘금강산’ 아들이 호들갑을 떨며 한국에서 남진이 공연 차 댈러스에 왔는데 누군가의 ‘빽’(총영사) 덕으로 멀고도 외진 킬린까지(댈러스에서 4시간 거리) 스페셜 공연 하러 온다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티켓을 팔고 있었다.
우리는 티켓을 사려 하지 않았다. 그 때 남진은 우리들 사이에 별 인기가 없었고 팝송이나 통기타가 대세였다. 그러나 ‘금강산’ 아들은 타고난 비즈니스맨이라 나도 한 장 구입했다.
남진 공연은 날짜와 시간 그리고 장소가 아주 절묘했다. 일요일 오후 공연은 한인교회 옆 댄스홀을 빌렸다. 관중이 모자랄 것을 대비해서 목사님이 예배시간을 조절해 주셨다. 그런데 어디서 어떻게 알고 찾아 왔을까? 한국 ‘언니’들이 인산인해로 몰려오는 것이었다. 식당 주차시설이 모자라 교회 주차장까지 꽉 차 버렸다. 그리고 현장에서 티켓을 구매하고자 하는 언니들로 인해서 아수라장이 되었다. 초만원의 인파로 인해 탁자와 의자들을 밖으로 옮겼고 공연은 두 시간이나 지연됐다.
남진의 입장은 마치 멤피스에 엘비스가 나타난 것과 같은 뜨거운 열기 그 자체였다. 당시 현지에서 급히 조달한 밴드는 오합지졸 아마추어들이었는데도 아주 재미있게 진행됐다. 이역만리 외지에서 남진 공연을 본다니 믿어지지가 않았다.
# 엘비스 못지않았던 남진의 인기
“저 푸른 초원 위에…”로 시작된 흥겨운 공연은 고삐가 풀어진 망아지, 브레이크가 파열된 기차 마냥 달렸다. 가수의 열정과 관중들의 열기로 공연장은 용광로 도가니로 돌변했다. 그는 공연 중 누차 이 먼 곳에 와서 사시는 언니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그 때 싱싱했던 남진은 거의 3시간 독무대를 일사천리로 진행했다. 그는 당시 인기 있던 엘비스(Elvis)의 ‘Burning Love’와 팝송도 열창했다. 온몸이 땀에 젖은 그는 완전 녹초가 되어 마이크를 내려놓았다. 공연은 그렇게 끝나는가 싶었다. 그런데….
# 눈물바다 만든 ‘가슴 아프게’
관중들이 왜 최고의 히트곡을 안 불러주느냐며 아우성이었다. 등에 밀려 남진 씨가 다시 무대 위로 올라왔다. 그 때 이구동성으로 언니들이 “가슴 아프게”를 외쳤다. 그 특유의 입가 미소를 지으며 “아따, 찐짜, 가슴 아프 뿌리면 우짤라코…” 라고 농을 던졌다.
그런데 밴드 멤버가 벌써 사라져 버렸다. 지금 기억에도 생생한 그 장면. 타고난 연예인 남진은 마이크를 잡고 청중을 다독인 다음 밴드의 반주도 없이 노래를 시작했다. 그의 구슬픈 음성이 스피커에서 흘러 나왔다.
“당신과 나 사이에 저 바다가 없었다면~~~”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순간 옆을 바라보니 ‘긴 머리 김’의 여친이 내 바로 옆에 혼자 서 있는 것이 아닌가. 그 ACDC 좋아한다던 여인이 구수한 남진 공연에 온 것도 의외였는데 그녀의 양 볼에는 눈물이 수없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갈매기도 내 마음같이 목메어 운다~~” 대목에서 공연장은 완전히 눈물바다가 되어 있었다. 뒤 이어진 남진의 그날 마지막 노래 ‘어머니’는 타향에 와 사는 언니들을 초토화시켰다. 진정한 감동이란 공동체에서 함께 공유할 때 깊이가 더해지는 것이다.
# 착한 미국 아저씨들
차를 빨리 빼기 위해 밖으로 뛰어 나왔다. 자정을 넘긴 시각 주차장에는 언니들을 픽업하려는 미국 남편들의 차로 만원이었다. 줄 서기를 잘하는 미국사람들답게 착하게 밖에서 와이프들을 기다리는 것이었다. 그때 ‘긴 머리 김’ 여친이 어느 미국 남자 차에 승차하는 것을 목격했다. 순간 마음이 착잡했다. 왜 젊고 잘생긴 총각이 처녀들도 넘쳐나는 세상에 굳이 유부녀와 사귈까? 그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룬다.
<다음에 계속>
글·사진/ Jeff Ahn
(jahn8118@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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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eff Ah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