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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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뜻한 밥 한 끼

2020-11-20 (금)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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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수감사절이 다가오지만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코로나19 확산에 ‘ 올해는 추수감사절 없다 ’는 말이 공공연하게 나오고 있다. 타주 방문을 자제하는 것은 물론 같은 뉴욕 주에 살아도 가족들과 만나려면 우선 코로나19 진단검사부터 받으라고 한다.

올해 추수감사절에는 부모 형제자매 간에도 따뜻한 밥 한 끼 같이 먹기가 힘들 것 같다.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백인 이민자와 인디언 원주민들이 형제 같은 우애로 나눈 ‘따뜻한 밥 한 끼’ 인데도 말이다.

1620년 9월16일 영국 청교도 102명이 잉글랜드 남서부 플리머스에서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힘든 항해 끝에 11월21일 매사추세츠주 플리머스에 도착했다. 지금으로부터 꼭 400년 전이다. 종교의 자유를 찾아 온, 미국 이민자의 조상인 이들은 매섭고 추운 겨울을 배에서 보내는데 이 중 46명이 숨질 정도로 고통의 시간을 보내었다.


아메리카 인디언 왐파노아그 족이 이들에게 사슴과 칠면조 고기를 나눠주고 옥수수 재배법을 알려주어 새로운 터전에 정착할 수 있게 도왔다. 1621년 가을, 이주민들은 첫 수확을 하자 원주민들을 초청해 사흘간 특별감사 잔치를 벌였다.

1623년 메사추세츠주는 추수감사절을 공식 명절로 선포,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대통령이 국경일로 지정, 3대 제퍼슨 대통령은 잉글랜드 왕의 관습이라면서 국경일에서 제외, 다시 1863년 링컨 대통령이 11월 마지막 목요일을 추수감사절 지정, 1941년 프랭클린 D. 루즈벨트 대통령이 11월 4번째 목요일로 추수감사절로 정한 것이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초창기 추수감사절 축제에서 인디언 모자와 복장을 한 90명의 원주민들과 레이스 칼라 두른 검정옷과 두텁고 부풀린 롱드레스 차림을 한 53명의 필그림들이 앉거나 서서 밥 한 끼를 나누는 모습은 참으로 아름답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만남은 오래 가지 않았다. 경작지를 넓히려는 이주민, 함께 온 감염병 세균 등으로 인디언 원주민은 수없이 사망했다. 식민지에서 출발하여 세계 최강국 미국의 기둥이 된 이들은 원주민에게 ‘따뜻한 밥 한 끼’ 에 대한 빚을 졌다.

지금도 이 밥심은 세계 곳곳에서 필요하다. 올해 노벨평화상은 유엔세계식량계획(WFP)가 받는다. 예멘, 콩고, 나이지리아, 남수단 등에서는 폭력 분쟁과 코로나 팬데믹이 겹치면서 굶어죽기 직전인 주민의 숫자가 극적으로 증가했다.

세계식량계획은 4월 보고서에서 코로나19 여파로 올해 말까지 식량 위기를 겪는 사람들의 수가 지난 해 1억3,500만명에서 2억6,500만명으로 두 배로 늘어날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우리의 문제는 미국에서도 하루 삼시세끼를 걱정하는 이들이 나날이 늘어나고 있는 것이다. 한인사회에서는 몇 달 전부터 코비드 성금을 모아 서류미비자 및 저소득층에게 식품 쿠폰을 나눠주고 있고 터키와 쌀 보내기 행사, 사랑의 음식 나누기 행사도 열리고 있다.


뉴저지연합교회는 타민족 교회인 갈릴리교회와 코너스톤 교회 세 곳과 연합하여 매주 목요일 순번을 돌아가며 지역주민 150명에게 식사를 제공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수혜자보다 형편이 낫지 않지만 자격이 안되는 한인 가정 중에 식품비가 힘겹다는 이들이 많다. 설사 마스크와 장갑으로 중무장한 다음 장을 보아 집에 갖고 왔다고 하자. 바로 손대지 못하고 알콜로 봉지를 닦아내고 손질하여 요리해 먹기까지 그 기나긴 여정이 사람을 지치게 만든다. 돈이 없을 때는 심리적으로 먹고 싶은 것도 더 많다. 허기가 지는 요인 중 하나가 스트레스와 불안이다. 대선은 끝났지만 사회 분위기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앞으로 날은 더욱 추워지고 코로나 팬데믹은 더욱 심해질 것이다. 저녁에 지치고 피곤한 몸으로 집에 오면 우렁각시가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따뜻한 밥을 차려놓는 로망, 그 밥을 먹으면 마음이 넉넉해지고 흐뭇해지며 다시 열심히 살고 싶은 의욕이 생길 것이다. 코로나 팬데믹이 주는 모든 상처를 잊게 하는 ‘따뜻한 밥 한 끼’, 그 고마움은 이루 말할 수 없다.

<민병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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