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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생일

2020-11-20 (금)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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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생일이 있다. 일년 삼백 육십 사일이 평범하다면 적어도 생일날 하루는 특별한 날이다. 수억명의 사람이 지구에 살고 있지만 오직 나는 나 한 사람뿐이니까. 그래서 많은 사람이 생일을 기념하고 축하한다. 가족, 친구나 가까운 지인들이 축하를 해 준다. 누군가 나를 기억하고 축하해 준다는 것은 참으로 고마운 일이다. 그러기에 나도 가족들이나 교회 식구들 또는 특별한 친구의 생일을 기억하려고 애를 쓴다.

다행히 우리 식구들의 생일은 기억하기가 쉬운 편이다. 남편의 생일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잊을 수 없는 광복절, 첫째 딸 아이는 만우절, 둘째 아들 아이는 국군의 날 태어났다. 일부러 맞추려 해도 쉽지 않을 날들이 식구들 생일이니 우리 가족에겐 더 특별하다. 둘째 아들 아이를 낳고 병원에 있을 때 대한민국 군인들이 모두 나와 시가행진을 해 줬으니 대단하지 않은가.

그렇게 식구들의 생일날이 특별한 데 비해 내 생일날은 그저 평범한 날이다. 내겐 특별한 날이지만 우리 가족들처럼 절대 잊을 수 없는 날은 아니다. 그런 내 생일이 이 년 전부터 특별해졌다. 친손녀가 같은 날 태어난 것이다. 며느리가 임신하고 나서 아들이 말했다 “예정일이 엄마 생일하고 사나흘 차이 나요. 잘하면 같은 날 태어날 수도 있겠어요…” 난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날 삼백 육십 사일이 있는데 꼭 그날 맞추지 않아도 돼.’ 그러나 내 바람은 빗나갔고 우리 손녀 딸은 할머니를 너무 좋아했는지 기어이 같은 날 세상에 태어나 내 생일을 특별하게 해 주었다.


아이가 태어난 후부터 내 생일은 좀 달라졌다. 이 년 전엔 손녀를 낳느라 고생한 며느리가 친정에 있어서 아들 식구를 볼 수 없었고, 작년엔 돌잔치를 하느라 외가댁에 가 있어서 함께 할 수 없었다. 올해는 아들이 직장을 옮기게 되어 멀리서 카드로 인사를 대신해야 했다. 나 또한 소중한 우리 손녀의 생일을 그렇게 멀리서 축하할 수밖에 없다. 생일을 핑계 삼아 그리운 아들을 보고자 했는데 이 또한 갈수록 어려워지게 된 것이다.

한편 섭섭한 마음이 들었지만 바뀌지 않는 현실 속에서 내 생각을 바꾸어 보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일이 아니라도 날마다 기억되는 엄마, 누군가에게 잊혀지지 않는 사람이 되자고. 어디에 있든지 어디를 가든지 그렇게 기억되는 사람으로 남는다면 행복한 사람인 거라고.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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