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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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뒤에 숨은 것들

2020-11-18 (수) 한영국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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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BLM(‘흑인 생명도 소중하다’) 운동으로 많은 것들이 변하고 있다. 지난 7월 워싱턴 축구 팀이 ‘레드스킨(Redskns)’이라는 구단 이름을 잠정적으로 ‘워싱턴 축구 팀’으로 바꾸었다.

팀이 창설된 1932년 이래 일부 미국 인디언들은 꾸준히 이 이름이 인종차별 적이라고 지적해 왔다. 붉은 피부는 문명이 발달하기 전 전쟁에서든 시합에서든 승자가 패자의 (피로 붉게 물든) 사체를 상으로 받았던 풍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또 뉴욕 타임스에서는 올해의 사태를 계기로 신문에 나가는 ‘흑인’이나 ‘흑인 문화’라는 단어를 대문자로 시작해 표기하겠다고 발표했다.


‘백인(white)’이라는 말은 어떤 특정 집단의 문화와 역사를 대변하지는 않기 때문에 그대로 쓰지만, 현재까지는 특별한 감정과 특별한 문화와 특정한 역사의 아프리카 오리진의 사람들의 ‘흑’은 존경(그리고 미안함?)을 담아 대문자로 쓰겠다는 것이다.

더군다나 백일우월주의자들이 ‘백’을 대문자로 표기해야 한다고 오래도록 주장해 왔기 때문에 이러한 결정을 내렸다고 한다. 철학적이고 학문적인 논쟁의 여지는 많겠지만 흑인들의 한이 풀어질 때까지 만이라도 우리가 배 아파할 이유는 없을 것이다.

요즘에는 미국 내에서 모든 주민들을 뜻할 때 ‘백인’, ‘흑인’ 하고는 뒤따르는 말이 ‘갈색인(brown)’이다. 종래는 남아시아계 미국인이나 스페인이나 포르투갈 오리진의 미국인을 지칭하는 말이었다.

중동계 미국인이 스스로를 갈색인이라고도 하는데, 미국 인구조사에서는 그들을 ‘백인’으로 분류한다. 그런가 하면 필리핀계 미국인을 비하하는 말로도 쓰였다. 요즘처럼 공공연히 흑인, 백인, 갈색인으로 인종을 지칭하면 우리는 자연히 갈색인에 포함된다.

말이라는 것이 생성되고 변화하고 사멸하는 것이지만, 어쩐지 내가 갈색인은 아닌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이름 뒤에는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흑과 백에 대한 선입견을 지양한다고는 하지만 우리 속에 그것은 참으로 뿌리 깊게 박혀 있어 뽑아 내기가 쉽지 않다. 흑인들은 그런 것이 몹시 억울했을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갈색인’이라는 말은 또 어떤 것들을 상정하게 될지 두려운 마음이 든다.

어려서 읽은 ‘정글 북’에서 ‘빨간 꽃”은 ‘불’의 상징이었다. 사실 ‘빨간 꽃’에는 정글을 파괴하면서 자신들의 영토를 넓혀가는 인간에 대한 두려움의 함의가 포함되어 있었다. 마음의 저 깊은 곳에서 나도 모르게 흐르고 있는 무의식의 강처럼, 이름 뒤에는 참으로 많은 것들이 숨겨져 있다.

<한영국 /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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