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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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년 전에 일어났던 일

2020-11-18 (수) 엄호택 / 광복회 워싱턴지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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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기록될 2020년이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이 지나가고 있습니다. 1920년은 2020년전의 100년이 됩니다. 1920년은 저의 외조부가 일제의 통치에 대항하다가 세상을 떠나신 해입니다.
몇 년 전 서울 현충원에서 독립투사 묘역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묘비에 '순국선열' 또 다른 묘비에는 '애국지사'라 적혀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순국선열이라 적혀 있는 분들은 1945년 8월 15일 해방 전에 돌아가신 분들이며, 독립운동을 하였더라도 해방 후에 돌아가신 분들은 애국지사라 칭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조부께서는 정확히 1920년에 돌아가셨으니 올해가 꼭 100년이 되는 해입니다. 그 때 저의 어머니는 12살 되는 소녀였습니다. 남편과 아버지를 잃은 두 모녀는 나라도 없는 나라에서 도움을 청할 곳도 없었으며, 도와 줄 사람들도 없었다고 하였습니다. 그 어려운 시절에 미국에서 온 여선교사가 그 지방을 지나다가, 도움을 주어서 그 소녀를 자기들이 운영하는 여학교에 데려다 기숙사도 제공하면서 전 학교 과정을 수료하게 해주었습니다. 여러 여자선교사들이 나라의 이름도 없는 나라에 와서 많은 어린 소녀들에게 교육을 받게 하여 후에 그들이 대한민국의 여성 지위를 갖게 해 준 고마운 분들이 되었습니다. 나중에 그 여인선교사들은 미국 부유한 집의 자녀들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의 어머니는 해방 후에 박현숙, 황애덕, 이신덕 등과 함께 이북여성동지회를 창설하고, 이북에서 남으로 온 많은 피난민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뿐 아니라 6·25전쟁 중에는 전쟁 중 남편을 잃은 미망인들을 위해 전쟁 미망인회를 만들어 도움을 주었습니다. 그리고 돌아가시기 얼마 전에는 고아원을 운영하면서 어려운 아이들을 도와주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어려서 도움을 받은 것을 다시 도와주는 것을 보아 왔습니다.


우리 전대의 여인들은 그 어려운 가운데에서 굴하지 않고 지혜와 슬기로 어려운 시기를 극복 하여 온 것을 보면서 자라 왔지만, 정작 나는 그들이 해왔던 일들을 따라 못 하는 것은 고사하고 근처도 못간 것을 느끼고 있습니다.

할아버지가 독립운동을 하셨다는 것은 어려서부터 간혹 들었지만 자세히 알지는 못하였습니다. 우연한 기회에 할아버지께서 1996년 11월에 나라에서 애국장 훈장을 추서 하였는데, 그때는 이미 어머님이 돌아가신 후에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저 또한 1920년 독립신문에 실렸던 기사를 전제로 공적이 이뤄졌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대한독립당 일원이라는 것도 알았습니다.

할아버지의 독립 염원을 받아 할머니와 어머니는 여러 면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는 일들을 하였지만, 정작 나는 남을 돕는 것이 미흡함을 통감합니다. 남은 삶이 얼마나 될지 모르지만 할 수 있다면 많은 일들, 같이 지난 분들, 그리고 먼저 가신 분들의 영혼을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남은 일이 아닌가 합니다.

<엄호택 / 광복회 워싱턴지회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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