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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총장과 미자하(彌子瑕)

2020-11-17 (화) 박인영 / 게인스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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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7월말에 문 대통령과 여당의원들로부터 극구 칭송(稱頌)을 받으며 임명됐던 윤 총장은 8월말이 되자마자 검찰개혁과 정권의 적으로 비난받기 시작했었는데 이제는 정치를 하고 있다는 공격까지 받으며 사퇴를 압박받고 있다.
이 정권의 특수한 속성을 파악한 사람이라면 윤 총장을 식물총장으로 만든 이유까지는 이해할 수 있으리라 싶다.
하지만 납득할 수 없는 점은 임명 전 청문회에서 야당의원들이 총장의 처가에 관련된 의혹들을 제기했을 때 여당의원들이 벌떼처럼 일어나 아무런 잘못도 없었다며 극력 변호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건만 이제는 온갖 수모에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윤 총장을 해고할 구실을 찾기 위해 추미애 장관이 바로 이 케케묵은 의혹들을 다시 수사하도록 검찰에 지시하고 아무도 문제삼지 않았던 세금포탈 여부까지 조사하고 있는 것이다.

이 어이없는 자가당착(自家撞着)에 대한 설명은 지금으로부터 2천 수백년전의 인물인 미자하(彌子瑕)의 고사(古事)에서 찾을 수 있는데 이 정권의 수준은 인지(人智)가 발달하지 않았던 그 아득한 옛날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위(衛)나라에 미자하라는 미소년(美少年)이 있었는데 그는 임금으로부터 각별한 총애를 받았다.
어느날 밤 어머니가 병이 났다는 전갈을 받은 미자하는 임금의 허락도 받지 않고 임금의 수레를 타고 가서 어머니를 만났다.
당시 위나라의 법률에는 이 행위는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에 처하게 되어 있었지만 왕은 되려 그 효심을 칭찬했다. 또 어느날 임금과 과수원에서 노닐던 미자하가 복숭아 하나를 먹어보니 맛이 너무 좋아 자기가 먹던 복숭아를 임금에게 바쳤다.

이때에도 임금은 “참으로 나를 사랑하는구나. 자기가 달게 먹던 것도 잊고서 내게 먹게 하다니”라고 칭찬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 임금의 총애가 식었을 때 미자하가 죄를 짓게 되자 임금은 “그자는 예전에 함부로 내 수레를 몰래 탄 적이 있었고 제가 먹던 복숭아를 내게 먹이기까지 했었다”고 하면서 죄를 물었다.
이 이야기는 똑같은 행동도 권력자의 애증(愛憎)에 따라 법리의 적용이 얼마든지 자의적(恣意的)으로 변함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런 무법한 일이 개명천지(開明天地) 대한민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우리를 공격하는 적은 없애버려야 하는’ 현 정권의 조폭같은 진영논리 때문이다.


정권의 ‘방탄소녀’로 나선 추 장관과 청문회 때 윤 총장의 ‘방탄소년단’으로 맹활약했던 여당의원들의 총공격으로 고립무원의 곤경에 빠진 윤 총장의 잘못은 그가 문 대통령의 ‘살아 있는 권력의 눈치를 보지 않고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 엄정한 자세로 모든 권력형 비리에 임해 달라’는 말을 액면 그대로 믿었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이 말한 권력과 사람은 이전 정권들에만 국한된다는 사실을 진즉에 알아채지 못하고 우직하게 조국 전 법무장관과 울산시장 선거개입 사건을 비롯한 많은 권력형 비리 관련자들을 기소한 것이 결정적 실수였다.

반대의 목소리는 물론 이견(異見)조차 용납하지 않는 전체주의 정권은 이념적 근친상간에 의한 순혈(純血)주의를 지향하게 되어 있는데 근친교배는 생물이건 학문이건 그 집단을 열등(劣等)한 존재로 타락시킨다.
건전하고 다양한 주장들을 배척하는 지도자와 정권에 미래는 없다.

<박인영 / 게인스빌,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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