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에는 정말 밤잠을 설친 날이 여러 날 되었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자야 할 시간에 잠을 놓치면 자는 게 힘들어지기 시작했다. 그런데 화요일 선거날 밤부터 시작해 당선자 윤곽이 드러날 때까지 며칠간 저녁마다 TV 화면과 인터넷을 통해 개표 상황을 파악하느라 잠을 계속 놓쳤다.
그러나 사실 밤잠을 설치기 시작한 건 선거일 바로 전날 밤부터였다. 월요일 밤에 삼성화재배 월드바둑 마스터스 결승전 제 2국이 미국 동부시간으로 밤 9시부터 시작했던 것이다. 한국의 제 일인자인 신진서 9단과 중국 최고의 커제 9단 사이의 3판2승 결승 시리즈에서 신 9단이 1국에서 졌기에 2국에서는 꼭 이겼어야 했다. 그런데 5시간의 혈투 끝에 아쉽게도 신진서가 반집 차이로 패했다.
종반에 들어갈 무렵 유리했던 신진서가 초읽기에 몰리면서 조금씩 손해 보기 시작하다가 결국 가장 적은 집차인 반집으로 지고 말았다. 마지막 순간까지 유튜브를 통해 생중계로 보던 나는 허탈감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억울했다. 특히 바로 전날 열렸던 1국에서 말도 안 되는 이유로 졌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1국에서는 신진서 9단의 착수 과정에 컴퓨터 ‘마우스 미스’가 있었다. 두 기사의 대국은 코로나 바이스 감염 우려 때문에 화상으로 진행되었다.
즉 대국 당사자들이 중국과 한국에 떨어져 있으면서 모든 착수를 컴퓨터 화면에 마우스를 사용해서 해야 했다.
그런데 신진서 9단의 대국 초반 제 21수가 죽음선이라고 불리우는 바둑판 가장자리 선에 두어졌다. 그 선에 착수는 바둑의 종반에서나 두어진다. 초반에는 생각할 수 없는 자리이다. 그런데 다른 곳에 착수하려고 마우스를 움직이는 과정 중 마우스 오작으로 그만 1선에 착수가 되고 만 것이다.
그 수를 본 사람들 모두 아연실색 했다. 상대 기사도 믿을 수 없다는 듯 한동안 대응을 못했다. 그러나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한 번 착수된 것은 다시 거둘 수가 없다. 그것이 규칙이다.
사실 바둑 규칙들이 어처구니 없는 상황에서도 철저하게 지켜지는 것을 그 전에도 몇 번 보았었다. 프로 기사들 사이의 대국에서 계가할 때 요즈음은 중국식으로 많이 한다. 그래서 과거 한국식으로 할 때 바둑이 다 두어진 다음 공배는 메우지 않고 그대로 두었으나 중국식의 경우 기사들이 번갈아 두면서 모두 채운다.
그런데 어느 한 대국에서 공배를 메워 나가다가 한 쪽에서 ‘아다리’가 되는 것을 깜빡 잊고 자충수를 두어 상대가 그냥 돌을 잡아 버리는 것을 보았다. 그렇게 해서 실수를 한 기사는 이긴 바둑을 졌다.
상대 기사는 어이없는 실수임을 알면서도 물러주지 않고 정해진 규칙에 따라 두면서 그냥 돌들을 잡아 이기고 마는 것이었다. 규칙에 따라 두는 것이었다.
또 한 대국에서는 한 기사가 돌을 놓았다가 순간적으로 다시 들었다. 그런데 그것은 허락되지만 그 다음에 착수할 때는 원래 먼저 놓았던 곳에 그대로 다시 놓아야 한다. 그러나 이 규칙을 잊어버렸던 그 기사가 다른 곳에 착점을 하는 바람에 실격패를 당했다. 그리고 또 다른 대국에서는 착수를 할 때 돌을 한 곳에 놓았다가 밀면서 다른 곳으로 옮겨 착수를 마치는 바람에 실격패를 당하는 것도 보았다. 새로 규칙이 바뀐 것을 챙기지 못했던 기사가 어처구니 없이 패배를 당한 것이다. 그러나 규칙이 중요하니 지켜져야 한다는 데에는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
이번 미국의 대통령 선거는 정말 치열했다. 그러나 이제 개표 결과가 승자가 드러날 정도가 되었으면 규칙과 전통을 존중하는 모습을 모두가 보여주었으면 좋겠다. 물론 소송 제기는 후보자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이다. 그렇지만 변호사들은 클라이언트가 원한다고 무조건 소송을 제기해선 안된다.
소송제기에 있어 변호사들이 지켜야 할 규칙들 가운데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실제로 소송 제기하기 전에 클라이언트의 주장을 뒷받침 할 만한 사실적 증거의 존재를 파악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것을 파악해야 할 책임이 변호사들에게 있다. 그러한 파악 없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것은 규칙 위반이며 ‘생떼’에 불과하다. 생떼에 국민들이 볼모로 잡혀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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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 변호사,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