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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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부부의 사계절

2020-11-13 (금)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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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가정이 코로나로 일상이 바뀌기는 했지만 또 다른 모습으로 분주하다. 아이들이 있는 집은 아침 일찍부터 화상 수업을 챙기느라 바쁘고,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은 장소만 집일 뿐 일이 많아 컴퓨터 앞에서 움직일 수가 없단다. 그러나 우리 집 아침은 늘 느긋하다. 깨워야 될 아이도, 정시에 일을 해야 할 남편도 없다. 분명 나도 분주할 때가 있었는데 내겐 아주 오래 전 일인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다 문득 ‘결혼도 사계절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혼해서 단 둘이 살며 신혼의 재미를 알콩달콩 느끼는 시절을 봄이라고 한다면 아이를 낳아 키우면서 바쁘게 사는 시절을 여름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다 아이들이 대학을 가고 출가를 할 때까지 성인으로 함께할 때가 가을이라면 모두 출가하고 부부만 남았을 때를 겨울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는 비교적 일찍 결혼을 해서 친구들에 비해 모든 순서가 빠른 편이다.

부부만의 봄을 느낄 새도 없이 두 아이를 키우느라 정신없이 여름을 보냈다. 지나고 보니 제일 행복했던 시절이었다. 일하고 돌아서면 밥을 해야 하고 아이들 숙제를 챙기느라 정작 나는 어디 있나 싶었지만 그 속에 내가 있었고 온 가족이 도란도란 함께했던 식탁이 지금도 너무 그립다. 어른들은 그때가 좋을 때라 하셨지만 그 시절엔 그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대학에 갔을 때쯤엔 내 일이 더 바빠졌고, 직장을 다닐 때는 아이들을 통해 몰랐던 또 다른 미국을 배우며 가을을 지냈다. 그러다 두 아이가 모두 출가하고 나니 지금은 덜렁 우리 부부만 남았다. 그럼 내겐 지금이 겨울일까?

부부들마다 사계절은 모두 다를 것이다. 봄이 긴 사람. 여름이 없는 사람. 가을이 너무 긴 사람. 겨울을 지내보지 못한 사람….. 참 감사하게도 나는 세 계절을 잘 지내고 겨울을 보내고 있다. 아주 특별하지도 않고 너무 덤덤하지도 않은 세월을 보내고 남보다 조금 일찍 맞는 겨울이다. 부부가 살면서 좋은 일만 있지는 않지만 그래도 함께할 사람이 지금도 곁에 있음이 감사하다. 더 건강하게 어려운 시기를 잘 지내며 훗날 우리 부부의 겨울도 좋았노라 추억하고 싶은데 몸은 봄부터 고생을 해서 그런가 자꾸 고장이 난다. 그런 우리 부부의 아침은 약을 먹으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저녁은 이렇게 하루를 맺는다. “약 먹었어요? 굿 나잇!”

<양주옥 (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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