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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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을의 정치 축배와 찬가

2020-11-09 (월)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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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습성처럼 꼭 집어 표현할 수 없는 신비스런 우수가 밀려온다.
내게 있어 가을은 떠난 사람들이 그리워지고 있을 법 했던 환상의 과거사에 대한 아쉬움에 문득문득 서러워지는 계절이다. 속세가 번잡한 소음들로 소용돌이 쳐도 가을의 침잠한 정서는 곧장 평화로 접어들게 만든다.

가을 정취에 젖어들면 어느새 술잔을 들게 되고 그리하여 취기가 오르면 또다시 표현 못 할 황홀감에 빠져든다. 클로드 모네가 그린 자연 풍광이나 어디론가 달리고 싶어 몸부림치던 신체 장애인 로틀렉이 그린 ‘길’, 길게 뻗은 가로수들을 머릿속에서 즐겨본다. 확실히 내게 있어 가을은 변신의 계절이고 슬픔의 계절이고 우수의 계절이다.
아직도 내 심장에는 젊은 혈맥이 요동치고 흰 백발만 날리는 머릿속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뒤엉켜 갈등을 겪어내고 있는건가. 해마다 찾아오는 가을이지만 내게 가을이 몰고 와 안기는 갖가지 감상들 앞에 번번이 저항 한 번 못해 보고 굴복해 버린다. 가을이 발산하고 있는 그윽한 애정의 향기는 한껏 음악의 갈증을 느끼게 만든다.

구태여 평소 즐겨 듣는 베토벤의 ‘전원’(교향곡 6번, Pastorale)이나 구노의 ‘아베마리아’나 이브몽땅의 샹송 ‘고엽’(Autumn Leaves)을 감상하지 않아도 좋다. 패티 김의 ‘가을을 남기고 간 사랑’, 이용의 ‘잊혀진 계절’도 심금을 울리기는 마찬가지다. 비발디의 사계(Four Seasons)는 일년내내 아무 때나 들어도 좋으니 다소 헤픈 기분이 들지만 이 계절 한 가운데선 차라리 “오동잎 한잎 두잎 떨어지는 가을밤에 어디선가 들려오는 귀뚜라미 우는 소리”로 술잔을 들게 만든다.


올해에는 코로나 바이러스까지 사람과 사람 사이를 단절시켜 곳곳에 외로움을 쏟아 놓았다. 옛날 선대들의 가을 감상이 떠오른다. “추색이 만연하니 미친 흥이 절로 난다… 솔불혀지 마라. 어제 진 달 돋아온다. 짚방석 내지 마라. 낙엽엔들 어떠랴. 아해야 산채박주일망정 없다말고 내어라…”
고대 로마 청년들도 가을이면 “묘지를 밝히기 위하여 관솔불을 켤 필요는 없다. 우리에게 술을 주신 박카스 신을 위하여 마시고 또 마시자…”고 했다.
동서고금 세계 어디서나 옛부터 가을은 인간들에게 모든 시름을 내려놓게 했었나 보다.

오랜 세월이 흘러도 가을은 언제나 옛날 일들을 머릿속에 다시 그려 보게 만든다.
미국에 온지 얼마 안되어 있었던 일화 한 토막.
샌프란시스코에서 1번 국도를 타고 50여마일 떨어진 바닷가의 매우 한적한 카페(bar), ‘노스탤지어’에 우연히도 가끔 들렸었다. 나홀로 드라이브를 즐기는 취미가 있어 자주 들렀던 그 카페 창밖으로 바다가 보이고 왼쪽으로 숲이 울창하여 가을이면 경치가 화려했다. 그 외진 곳에 ‘제시카’라는 이름의 여주인은 매우 우아했고 친절했다. 미국에 와 첫 가을에 만났던 그 여인,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가을은 분명히 잊을 수 없는 옛 추억을 되살아나게 하는 힘이 있는 계절인 것 같다.

그 많은 인연들, 사연들, 추억들 모두들 어디로 흩어져 어떻게 되었는지.
가을의 보이지 않는 위력 앞에 아쉬움만 차 오른다.
“아 세월은 잘 간다. 나 살던 곳 그리워라. 가슴에 날 품어다오-, 가슴에 날 품어다오, 너를 사랑해, 이-맘 아야야, 이 마음을 바치리라…” 가을이면 고향생각이 더욱 더 사무쳐 온다.
알 수 없이 북바쳐 오르는 설움을 달래려 야외로 나간다.

셰넌도어 가는 길에 누가 언제 씨를 뿌렸는지 길고 긴 코스모스 행렬이 평화로운 갈채로 위로를 안겨준다. 은막의 스타에서 모나코 왕비가 되었던 그레이스 켈리를 늘 코스모스와 비교했다. 내 아내도 코스모스와 같은 정을 느껴 지금까지 함께 인생길을 걷고 있다.
올 가을에는 유난히도 삶의 정경이 머릿속 화폭에 자주 담겨진다.
올해에도 가을 밤 하늘, 별들이 더욱 더 반짝이겠지… 시력장애가 안타깝다.
오! 이 거룩한 2020 가을을 위해 축배를 들어야겠다.

(571)326-6609

<정기용 / 전 한민신보 발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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