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한국에는 갑질 한다는 표현이 자주 거론된다. 아마도 몇 년 전 있었던 대한항공 부사장의 항공기 불법 회항 지시 사건과 그녀의 자매인 조현민 전무의 물벼락 사건 때문에 더욱더 그렇게 된 것 같다. 이런 재벌 오너2세들의 안하무인과 오만방자한 언행은 더는 국민들에게 용서받지 못한다.
갑질이란 상대적으로 높은 위치에 있는 자가 위아래를 철저히 구분해 나보다 조금이라도 더 아랫사람에게 함부로 행동하는 무례함을 뜻한다. 사회에 갑질이 넘친다면 그 사회는 힘 있는 자와 힘없는 자로 구분되는 말 그대로의 ‘약육강식의 법칙’이 지배하는 곳이 될 것이며, 그 사회의 법과 질서는 껍데기만 남을 것이다.
'갑질한다'에 딱 들어맞는 영어를 아직 본 일은 없다. 비슷한 말이 있기는 하다.‘boss round’ 또는’Bullying’ 정도가 그나마 가까운 표현으로 보인다. 미국에서 직업인에 대한 평가는 도덕성보다는 그가 이룬 업적에 의해 좌우된다. 그렇지만 자신의 특권을 남용한 갑질에 대해서는 엄격한 잣대를 들이민다. 우버창업자 캘러닉은 사내 성희롱 방조, 운전기사와의 말다툼, 경쟁사 기술 탈취 등 잇따른 추문에 시달리다 CEO에서 불명예 퇴진하고야 말았다. 미국의 대표적인 기업가인 록펠러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회사를 무너트린 갑질의 대명사였고 최근에는 MLB.COM 으로 유명한 밥 오무먼 사장도 직원에게 폭언을 퍼붓다 회장직에서 물러났다.이런 점은 물의를 일으켜도 창업자 또는 오너 일가라는 이유로 경영권을 유지하는 한국과는 다른 분위기다.
갑질을 하는 가해자의 경우 대부분 과거에는 그 또한 피해자였을 가능성이 많다. 이는 가정폭력을 당한 아이가 부모가 되었을 때 자녀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고 알려져 있는 것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다. 을의 위치였을 때는 피해자 입장이었지만 나중에 갑의 위치가 되면서 약한 자들을 강자가 된 자신이 괴롭히는 입장으로 변하는 것이다. 며느리 시절에 고생했던 자신이 시어머니가 되어서는 똑같이 며느리를 괴롭히는 대물림, 자신보다 높은 대학을 나온 사람들로부터 학벌주의로 피해를 보면서도 자신보다 서열이 낮은 대학 출신들을 한껏 무시하는 행동들이다. 이런 행위는 과거에 어떤 형태로든 피해를 보았던 사람이 나중에 자신이 당했던 것을 똑같이 다른 사람에게 행하는 이른바 보복성 갑질에 해당한다.
또 다른 형태의 갑질 행위를 국가 간의 외교 행위에서 보기도 한다. 최근에 미국 정부가 한국 방위비 분담금을 터무니없이 올려 인상을 요구하는 것이 그 좋은 예이다. 이것은 앞서 말한 개인의 보복성 갑질과는 또 다른 형태의 갑질이다. 이것은 국가 이익에 기반한 우월적 위치의 갑질 행위이다. 미국과 중국의 경제전쟁에 있어서 중국은 최후로 쓰일 무기로 희토류 수출제한을 검토하고 있다고 한다. ‘4차 산업혁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는 반도체 등 최첨단 제품을 만드는데 필수적 광물이다. 미국은 희토류 수입량의 8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한다. 이러한 국가 간의 갑질은 힘의 우위에 있어서 나오는 협상 전략이므로 도덕적 요구가 잘 먹히지 않는다. 상대 강국에 당신이 갑질하고 있으니 좀 더 겸손해 보라고 말해봤자 턱도 없는 말이 될 것이고, 그러니 이런 어려운 문제는 내가 다를 주제가 아니라고 변명하고 슬쩍 넘어가려 한다. 사실 답도 잘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들여다봤을 때 일반인들은 본인이 갑질을 한다고 생각하지 못한다. 돈이 많고 힘센 사람들이 돼보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에 설사 본인이 갑질을 하고 있다고 해도 그게 갑질인지도 모르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모르니까 오히려 그냥 당연히 하고 있는 것이다.
갑질은 내가 조금이라도 나은 상태에서 또는 뭔가가 있는 사람으로서 없는 사람에게 ‘이거 당연한 요구야’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이 정도 요구도 못 해?’ 이게 갑질이다. 본인은 모른다. 갑질은 재벌만 하는 게 아니다. 모두가 다 한다. 부모의 갑질일 수도 있고 정의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할 때 그것 또한 힘이기 때문에 절제하지 않고 겸손해지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갑질을 하게 될 수 있다.
우리의 눈에는 아마존 창업자 제프 베소즈가 거리의 노숙자와 똑같이 보일까? 그들이 동동한 인간이고 똑같이 존중받아 마땅한 인간이라고 생각할까? 이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보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갑질 DNA를 장착하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우리는 아직 갑질을 할 충분한 권력과 힘을 갖지 못했을 뿐인지 언젠가 그런 권력을 갖게 되면 갑질 괴물로 어느 순간 돌변할지도 모른다. 권력에 치여 갑질을 욕하지만, 우리 자신은 정작 우리보다 못한 환경에 처한 사람에게 또 다른 갑질을 하고 있지 않은지 돌아보아야 한다. 우리는 너무나 나약한 인간이라 ‘이 정도는 괜찮겠지’라며 작은 유혹에 흔들리다 보면 자기도 모른 체 언제가 괴물로 변한 우리를 마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리는 대단한 돈이나 권력을 갖고 있지 않아도 누구든 괴물이 되지 않으려 끊임없이 싸워야 하고 자신을 되돌아 보아야 하는 운명인지도 모른다.
다행히 우리가 사는 이 미국은 개인주의와 자유주의가 강조되고 또 우리는 소수민족으로 살아가다 보니 우리 동포들 사회에서는 한국처럼 갑질 문화가 심하지 않다. 바라건데 이런 좋은 문화 속에서 살면서 잠재적인 우리의 갑질 DNA가 발병하지 않고 한평생 그대로 잠복 중인 상태로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
정에스라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