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혼자 지내시는 90세 노모를 뵙기 위해 아내의 양해를 얻고 3주간의 한국 휴가를 받아 한국 자가격리 시설에 머무른지 12일째 되는 날이다. 매년 세금 보고 시즌이 끝나면, 어머님을 뵈러 한국을 방문하고는 했는데 올해는 코로나 사태로 엄두를 못내고 완화될 시기만 기다렸으나, 연말이 되어도 사태가 완화될 조짐이 없고, 나와 비슷한 처지로 한국에 노모를 두고 있어서 상황이 나아지면 같이 한국 방문하자고 약속했던 Y형의 어머님이 한달 전 갑자기 돌아가시는 것을 목도하고는 더이상 지체하지 않고 한국행을 결심했다. 14일간의 격리가 무척 혹독하다는 소식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평생 그런 생활을 해본 기억이 없는지라 다소 겁도 나고 과연 어떻게 견딜 수 있을지 암담하기도 했다.
최근 미국 및 전세계에서 확진자가 늘어, 한국정부가 해외입국자의 격리 시설 이용비를 하루에 15만원 부담시키고 위반시에는 천만원 벌금 및 1년 이하의 징역, 혹은 강제추방 조치를 취하는 등 서슬이 시퍼런 뉴스들을 읽고는 상황이 녹록치 않구나를 체감했다. 공항 대합실에는 인적이 거의 없이 썰렁했고 기내에는 불과40명의 이용객밖에 없었다. 비행기 안에서 나누어 주는 입국 신고 용지도 무려 네장이나 되어 코로나 증상 및 개인 정보에 대해 상세한 정보를 적어야 했다. 인천 공항에 도착해서 입국심사대에 기다리는 사람은 몇명 안 되었지만, 무려 2시간 여에 걸쳐 다섯군데나 검역 및 심사를 받아야 했다. 미국 시민권자는 사전 한국 입국비자가 없으면 공항 출입국 관리 사무실에 따로 들려서 입국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새로운 절차가 생겨난 것은 금시초문이었다. 한국에 가족방문을 하는 상황이므로 필수 준비물인 ‘가족 관계 증명서’를 받아서 제출했건만 외국인 단기체류자는 원칙적으로 공항에서 지정하는 격리 시설에서 지내야 한다고 윽박(?)지르는 바람에 다소 설전이 벌어졌다.
공항 지정 격리 시설의 열악함을 사전에 익히 들었던 지라 몸이 편찮으신 90세 노모를 방문하기 위해 힘들게 방문했으며, 어머님 집 근처에 해약이 안되는 해외격리자 체류 허가를 받은 ‘에어비엔비’에 예약을 해놓은 상태라고 상황을 설득하자, 책임자가 새벽에 어머님에게 확인 전화를 하고 나서야 나를 예정된 숙소로 가는 것을 겨우 허락해 주었다. 공항 요원이 나를 전담 감시(?)하는 공무원의 연락처가 담긴 ‘자가격리 앱’을 따로 설치해 주었는데 ,하루에 두 번씩 의무적으로 체온을 측정해서 건강상태를 앱을 통해 보고해야 하고, 나의 동선이 전화기에 저장되어 있어서 수시로 담당 공무원이 연락할 수 있게끔 되어 있었다. 정식 코로나 검사는 한국 도착 3일 이내에 의무적으로 받게 되어 있어서, 짐을 풀자마자 일산 보건소에 전화로 연락하니, 일반 택시나 버스 등 대중 교통수단을 타지 않아야 하며 도보로 보건소를 들리되 중간에 편의점이나 식당 등에 절대 들리면 안된다고 직원이 다짐을 주었다. 멀리 고향땅에 힘들게 왔건만 14일간은 그저 투명인간이 되어 있어야만 했다.
보건소에 가서 코로나 검사를 받고 다시 돌아오니 구청에서 라면, 햇반 등 무료 구호 식품을 한아름 보내주었다. 무척 고맙기는 하지만 내 나이에 그런 음식만을 먹고 지낼 자신이 없어서 동생에게 부탁하여 솜씨좋은 제수씨의 김치와 반찬집에서 몇가지 찬 및 국거리를 방밖에 놓아 달라고 부탁하였다. 14일 동안은 가족은커녕 아무도 못만나고 술 담배도 못하는 금욕 생활을 해야 했다. 누가 나를 만나는 것이 적발되면 그 사람도 14일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고 한다. 대통령까지 코로나에 걸리고 하루 몇만명씩 확진자가 나오는 미국의 참담한 상황이 널리 알려져서 이제는 도리어 미국에서 온 사람이 후진국 출신 취급을 받는 처지가 되어버렸다. 몇십년 전만 해도 아시아에서 이민을 오면 전염병 옮길 위험성이 있다고 해서 샌프란시스코 베이 바다에 있는 엔젤아일랜드(Angel Island)의 감옥같은 열악한 시설에 수감을 하고 매일 몸에 소독약을 뿌려대다가 한두달 후에 풀어주었다는 가슴아픈 역사가 오버랩이 된다.
나름대로 깔끔한 오피스텔을 얻었다고 하지만 모든 것이 한국형의 협소한 공간이라 며칠간은 적응에 애를 먹고 여기저기 몸이 부딪쳐 크고 작은 부상을 당하는 코미디 같은 현상이 벌어지곤 했다. 미국 회사 근무시간에 맞추어서 틈틈이 업무 교환을 하기 위해서는 새벽에 일찍 일어나야만 했고, 좁은 공간에서 지내는 만큼 운동도 정기적으로 하여 건강을 유지하고자 했다. 숙소 근처에 있는 식당에 전화만 하면 24시간 언제든지 식사를 배달해 주었으나 대부분은 가족들이 미리 준비해준 국 밥 반찬 등으로 혼밥을 해결했다. 체력과 건강을 챙기기 위해 아침 점심 저녁으로 나누어 하루 두시간 이상씩 운동하니 오히려 몸이 튼튼해졌으며, 잠도 푹 자고, 혼밥을 먹으니 적게 먹는 습관이 되어 오히려 몸이 가벼워졌으며, 삶이 아주 단순해지니 스트레스 받는 일도 거의 없어졌다. 항상 쉴새없이 몸을 움직여야만 삶이 지속되는 듯한 강박관념에 사로잡혀 평생을 지내왔던 나에게 이순간은 인생의 휴식기이기도 하고, 내 지나간 삶을 되돌아 보게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 여유를 주기도 하는 참으로 값진 선물이 되고 있다.
이제 며칠 지나면 어머님과 어쩌면 마지막 효도가 될 지도 모르는 모자간의 귀중한 시간을 보내게 된다. 삶은 흐르는 것이고 인간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으며 이별해야 하는 존재이지만, 주어진 현실과 가족 친지 회사 등 내 주변 사람들을 사랑하며 하루 하루 열심히 힘차고 건강하게 살아야겠다고 다시한번 다짐해 본다. 이 지긋지긋한 코로나 사태도 언젠가는 지나갈 것이며, 이 체험 또한 평생 잊지 못할 것 같다.
<
성주형 (공인회계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