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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호랑이 시’를 피한 나는...

2020-10-26 (월) 노신영(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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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한 가정의 아내이고, 결혼한 두 아이의 엄마이며, 금쪽 같은 손주가 셋이다. 아니 한 손자가 더 오는 중이다. 호랑이 해, 호랑이 달, 호랑이 날에 태어난 나는 다행히 ‘호랑이 시’를 벗어나 일부종사하는 운을 가질 수 있다는 말을 들으며 자랐다.

또 “신영이는 코가 납작해서 잘 살거야”라는 말도 자주 들었다. 콧대 높은 여자는 잘 살 수 없다는 의미로 하신 말씀이었다. 그리고 ‘호랑이 시’ 를 피해서 안심이 되신 할아버지가 내 팔자를 재확인한 말씀이셨을 게다. 그러나 그때 그 말이 내겐 ‘코가 납작해서 못생겼다”로 들렸다.

또 한번은 유치원 친구들과 아파서 유치원에 오지 못한 친구를 찾아간 적이 있었다. 그 집 문앞에서 들어가려고 하는데 갑자기 한 친구가 “신영아, 너는 못생겼으니까 들어오지 말어” 하며 내 앞에서 문을 꽝 닫아버린 적이 있었다. 이날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않은 채 수십년간 내 마음에만 품어 두었다.


사람의 뇌는 엄청난 컴퓨터이다. 그런데 사람이 만든 컴퓨터에는 있는데, 하나님이 만드신 두뇌라는 컴퓨터에는 없는 기능이 하나 있다. 바로 ‘delete’ 버튼(지우는 기능)이다. 컴퓨터에는 마음에 안 들거나 틀리면, 그리고 필요하면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있는데, 사람은 한번 들은 이야기나 본 것이나 경험한 깊은 감정들을 지울 수 있는 기능이 없는 것 같다. 한번 우리의 뇌에 들어온 정보는 뇌 속 어딘가에 죄다 저장이 되어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저장된 정보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의 행위를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남녀공학 대학을 다녔다. 정문을 가로막고 담배를 피우는 남학생들을 뚫고 지나갈 수가 없어서 일교시 수업에 늦은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교실에서는 늘 구석에 앉았다. 창문가나 혹은 햇빛이 들어오는 자리는 앉지 않았다. 빛을 등지는 자리만 골라 앉았다. 교실이나 다방 어디든 중앙 자리에 앉은 기억이 거의 없다. 나는 그 이유를 오랫동안 알 수 없었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후에야 내가 왜 그랬는지를 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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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신영씨는 대학에서 영어영문학을 전공한 뒤 뒤늦게 기독교 상담 석사 과정과 가정사역 박사를 마쳤고 지금은 AMFT(Associate Marriage and Family Therapist)로 일하고 있다. 또 가주개혁신학대학교에서 상담학을 강의하고 있으며, 17년간 아프리카 선교에 참여하고 있다.

<노신영(가정사역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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