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심한 정객들, 본분 잃은 언론들
2020-10-25 (일)
이영묵 / 문인| 맥클린, VA
벌써 3년이 되어 가나? 한국 촛불 시위에 참여하지는 않았지만 당시 나는 그 시위 뉴스에 몰두해 있었다. 그리고 지금도 그 명칭을 촛불 시위라고 부르지 촛불 혁명이라고 부르는 것을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
당시 최소 10명 이상의 고교 대학 동창, 사회에서 사귄 친구들, 다시 말해서 각각 다른 사람으로부터 현장의 분위기를 전달 받았다.
내가 내린 결론은 시민들의 정의, 정당, 공정 등에 귀를 열어달라는 순수한 시위이었다. 이런 순수한 시위를 현재 정권을 쥔 사람들이 아전인수로 ‘혁명’이라고 붙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후에 언론을 통해서 전개되는 최순실 비리, 딸 대학 부정입학 등의 뉴스로 분노했고 최순실, 이대 교수들, 장관, 정보부장 등 고위 공직자들의 투옥과 박근혜 대통령 탄핵까지 숨 가쁘게 돌아갈 때에 ‘에이 속 시원하다’ 하고 쾌재를 불렀다.
그러나 현 정권의 특히 전 현직 법무장관, 정대협 대표 같은 사람들에 관한 뉴스를 들으면서 이들이 최순실, 정유라 보다 더 나쁜 사람들이라는 범주를 넘어 그 뻔뻔함에 경악을 금치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다. 소위 광우병 파동 때에 그들의 기만과 충동의 선동을 체험하고도 내가 왜 지난 대통령선거 때에 그들의 선동에 넘어가지 말라고 주위사람들에게 말하지 못했을까 하면서 말이다.
새삼 이런 이야기를 왜 하는가 하면 머나먼 한국이 아니라 이곳 미국에서 대통령 선거가 임박하면서 이러한 선동과 기만이 난무하며 한국에서의 시민들이 촛불 시위 때처럼 그 물결에 휩싸이고 있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구체적으로 지금 트럼프 대통령 찍어 내기가 도를 넘어 지금 대통령 선거 후보들의 앞날의 설계를 듣는 정책은 안보이고 있다.
그러한 문제의 큰 이유가 언론이 언론의 본 모습이 아니라 꾸준히 트럼프를 죽이는 선동자로서 나서서 행동해 온데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시민들이 마치 한국에서 한때 박근혜 죽이기에 가세한 것처럼 지금 미국의 많은 시민들이 트럼프 죽이기에 세뇌당한 것 같다.
어느 정도인가를 이야기 해야겠다. 내가 어떤 사람에게 이렇게 이야기를 했다. “트럼프가 다 잘했다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우리 속담에 빈대 죽여야겠다고 초가삼간 불태워 버릴 수는 없지 않느냐? 이제 트럼프 죽이는 이야기 그만하고 미국의 장래를 이야기해야한다.” 대답이 이랬다. “비록 집이 타버릴지라도 빈대만은 죽여야죠. 나는 트럼프가 미워 죽겠어요.”
누가 이렇게 트럼프를 증오하게끔 만들었나? 물론 근원이야 세계화, 돈을 신이라 생각하며 돈을 위해서라면 세계 1위 자리를 중국에 내주어도 상관없다는 사람들, 그리고 사회주의적 생각을 가진 월스트리트 엘리트들이 주축이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러한 생각을 가진 사람들을 위한 행동대가 바로 언론이라고 거듭 단언한다.
참으로 언론들이 끔찍하다는 생각마저 든다.
본래 대통령 선거가 끝나고 누가 당선이 되더라도 소위 허니문(Honey moon) 기간이라며 반대당도 6개월 동안은 당선자에게 국민에게 약속한 정책을 펴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불문율이다.
그런데 취임도 하기 전부터 탄핵이니 어쩌니 하며 물고 늘어지기 시작 지금까지 정말 끈질기게 이어오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 성토는 이제 좀 그만하자. 모 TV는 마치 어느 정당 대변인 역할을 하는 것 아닌가 착각마저 들게 한다.
이제 모두 앞으로 4년간 누가 대통령 직에 올라 미국을 위하여 대통령 역할을 잘 수행할 수 있는지에 초점을 맞추자.
<이영묵 / 문인| 맥클린, V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