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그냥 난 당신앞에 서있을 작정이다

2020-10-24 (토) 조민현 /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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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천주교 신부라서 천주교신자께서 아프시다면 병원도 방문하고 너싱홈도 가고 재활원도 가고 호스피스도 가고 집도 방문을 하고 병자성사도 하고 기도도 하고 안수도 하고 성수도 뿌리고 병자성사 기름도 바르고 고해성사도 듣고 또 돌아가시면 장의사에 가서 연도도 바치고 묵주기도도 하고 장례미사도 하고 묘지에 가 하관식도 하고 살아왔다.

그렇게 살아오는게 나의 사제직 직분이라고 배워서 알았고 그렇게 해오면서 살았다. 그러다보니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의 장례도 치렀고 속전속결로 몇 시간만에 재만 남은 따뜻한 아버지의 유골박스도 받아들었고, 정말 사랑하는 이의 장례를 내 자신도 믿지 못하게 담담하게 치르고 보냈다.

얼마전 내가 좋아했던 선배신부님이 폐암이라고 한다. 키모를 받는단다. 같이 어울리면 재밌고 의기투합해 신나게 같이 놀던 분이라 더욱 마음이 아프다. 뭐라고 해야 할지, 뭐라고 생각을 해야 할지 어떻게 마음을 먹어야 할지 아무것도 모르겠다.


가끔 천주교신부이면서도 참 부처님의 말씀이 맞다고 느낀다. 인생이 고해이구나, 정말 고통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다가 죽는 존재이구나. 태어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다. 많은 아버지들이 애가 태어나는 것 보셨겠지만 나도 감사하게 아기가 태어나는 것을 직접 목격했다.

태어나는 게 얼마나 어럽고 힘들고 두려운 것인지 뱃속에서 빠지는 잿빛색 아이의 짓눌린 얼굴과 그 피곤해 초췌한 첫 눈망울을 난 잊을 수 없다. 그러면 자라는 것 성장하는 것은 쉬우냐? 학교는 이미 전쟁터이고 무거운 가방을 들고 새벽같이 학교에 가 앉아 공부하는 것을 몇십년을 해야 하냐? 그것도 뒤처지면 평생 먹고 살기도 힘들고 대접도 제대로 못 받고 살아가는게 인생이다. 그렇게 살다가 병들어 죽는게 또 쉬운 줄 아느냐? 쉽게 죽지도 못하고 온갖 고통 좌절 두려움에 고통 받다가 말라비틀어진 명태처럼 쓰러진다.

그런데 더 기가 막힌게 이렇게 살다가 병들어 고통받다가 절망과 두려움 속에서 죽는 것이 지금까지 다 남의 일이겠지 하면 살아왔는데 이게 점점 남의 일이 아니라 내일일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깊어지고 강해진다. 아니 아무리 부인을 하고 아니라고 우겨봐도 이제 남의 일이 아니라 나의 일이다. 나도 주변을 정리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가끔 나는 장례미사 강론 중에 하느님이 원망스럽다고 이야기한다. 어떻게 그 많은 사람들의 바람과 실날같은 희망을 가차없이 자르시고 이 세상에서 데리고 가시는지 말이다. 아쉽고 원망스러운게 정말이다.

입만 열면 하느님의 자비, 은총, 축복, 평화, 영원한 생명을 앵무새처럼 외우는 사제직분을 살아온 지 20년이 넘었는데 나도 흔들린다. 나도 방황한다. 나도 두렵다. 나도 하느님을 잘 모르겠다. 삶이 무엇인지 죽음이 무엇인지 영원한 생명이 무엇인지 더 더욱 모르겠다.

아예 아무것도 모르는 나의 모습, 아무것도 아닌 그저 텅 빈 모습으로 성당에 들어가 제대 앞에 선다. 이런 순간에 어떤 말도 맞지 않고 어떤 생각도 적절하지 않고 어떤 마음새도 그저 부족할 뿐이다. 그냥 난 당신 앞에 서있을 작정이다.

<조민현 / 요셉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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