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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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기도하는 손

2020-10-19 (월) 한연선 (더밀크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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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의 작품 ‘기도하는 손’이라는 그림을 좋아한다. 처음엔 그저 아름답다고만 생각했는데 그림의 탄생 배경을 듣고는 가장 좋아하는 그림이 되었다. 뒤러와 그의 친구 프란츠는 둘 다 무척 가난한 화가 지망생이었다. 그래서 둘은 번갈아 학비를 대면서 한 사람씩 그림을 배우기로 했다. 뒤러가 먼저 프란츠가 일해서 대주는 돈으로 공부를 마치고 유명한 화가가 되었다. 그리고 프란츠가 공부할 차례가 되었지만 그는 긴 시간 동안 고된 육체노동을 하느라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되었다. 그런 프란츠가 원망은커녕 오히려 무릎을 꿇고 친구를 위해 기도하는 모습을 보고 감동한 뒤러가 그린 그림이 ‘기도하는 손’ 이라는 명화이다.

이 그림을 보고 나에게 기도란 무엇일까 생각해 보았다. 내게 기도는 인내심 많고 늘 내 편이 되어주는 절친한 친구에게 속 깊은 이야기를 하는 것과 비슷하다. 혹은 제 필요한 것만 잔뜩 받아 떠나는 철없는 자식을 언제나 따뜻하게 품어주시는 부모님을 만나는 것과도 비슷하다. 다음번엔 당신의 마음도 들어 드리겠다고 다짐해 보지만 늘 내 사정만 하소연하다가 바쁘게 자리를 뜨기가 일쑤인 그런 만남 같은 것. 기도는 그렇게 내게는 염치 없으면서도 간절하고 또 가장 나다운 이야기를 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심지어 요즘은 종교가 없더라도 기도하고 싶어지는 전염병 시대다. 자신에게 있는 모든 것으로도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사람은 누구나 기도하게 된다. 불러본 적도 없는 대상을 이름도 모르면서 부른다. 그러고나면 왠지 무턱대고 희망이 조금 생기는 것 같다. 그래서 우리는 본능적으로 기도한다. 당신은 기도할 대상이 있는가? 혹은 내 이야기를 무한정 들어주다가 평안한 대답을 건네줄 상대가 있는가? 나 같은 경우는 하나님께 기도한다. 그리고 기도하는 시간이 늘수록 내 소원만이 아니라 타인을 위한 기도도 늘어난다. 다른 사람의 기도 속에서 나를 발견할 때도 있다. 부모가 되고 나니 아이를 위해 기도하느라 나를 잊을 때도 많다. 미운 사람을 위해 기도하는 기적도 일어난다. 그리고 그 모든 기도 끝에 주어지는 기도 응답들은 수많은 ‘기도하는 손’을 내 삶에 그려낸다. 망가져서 더 이상 그림을 그릴 수 없게 된 손에서 나온 명화, 나는 그것이 기도의 이유이자 기적이라고 믿는다.

<한연선 (더밀크 리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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