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이근 대위 신드롬

2020-10-14 (수) 여주영 고문
크게 작게
코로나 발생 이후 유튜브 시청자가 늘고 있는 가운데, 최근 '가짜 사나이'라는 제하의 영상으로 떠오른 사람이 있다. 그는 특수부대 출신 이근 대위로, 7월 개설한 그의 유튜브 채널 구독자가 현재 40만명을 넘어설 정도로 인기다.

그는 특히 “너 인성에 문제 있어?”, “반으로 죽일 거야” 등의 어눌한 말투로 화제를 모으고 있다. 영상에서 이근 대위가 "영어로 생각하고 그걸 번역해서 한국어로 표현하다 보니 가끔 이상하게 나올 때가 있다"고 하자, 다른 참여자가 "교포들은 영어 표현을 그대로 번역하다 보니 그렇게 된다"고 공감을 표시했다.

1984년생인 이근 대위는 한국 출생으로 미국에서 자랐다. 뉴욕 퀸즈에 살았던 이근 대위는 백인들이 많은 초등학교를 다니면서 인종차별을 당했고 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 특수부대를 동경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마음을 헤아린 부모는 그를 버지니아 군사대학에 보내주었다. 그는 2006년 군사대학 졸업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귀국했다.

인터넷에 뜬 프로필을 보면, 그는 해군 특수전전단에서 최우수 특수전 장교 상장을 받았고, 이후 특수임무 대대에서 대테러 전문성을 갖고 소말리아에 파병되어 해적선 검문검색 작전에 팀장으로 참여한 공로로 표창을 받았다.

3세 때부터 미국에서 살아 한국의 조직문화가 쉬울 리 없었던 그는 대한민국 해군장교가 되어 모든 교포들이 겪을 수밖에 없는 경계인의 삶을 살았을 것이다. 미국에서는 차별받는 동양인으로, 한국에서는 문화의 차이로 미국인 취급을 받으면서…

한국군대에는 진정한 군인정신, 애국자들은 다 사라지고, 조직순응, 상명하복을 통해 오로지 승진만 하면 된다는 문화가 퍼져 있다고 한다. 변화와 혁신이 없는 한국 군대조직을 이근 대위와 같은 사람이 원하는 변화를 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한국에서 활동했던 교포출신 중에는 이와 같이 한국문화와 갈등하는 삶을 겪은 사람이 의외로 많다. 지난해 미국출신 연예인 유승준이 한국대법원으로부터 그의 한국비자발급 거부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받아냈다.

유승준은 한국에서 연예인으로 활발하게 활동하던 2002년 한국군 입대를 하지 않고, 한국 국적을 포기하면서 미국시민권을 취득했다. 그러자 한국 법무부로부터 입국 제한을 당했다. 그는 2015년 한국의 재외동포 비자(F-4)를 신청했지만 비자 발급이 계속 거부당하자 소송을 제기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두 명 다 미국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청년이지만 한 명은 10대 시절 한국에서 반짝 스타덤에 올랐고, 다른 한 명은 대기 만성하여 30대에 영웅대접을 받고 있다. 한 명은 소송을 통해 간신히 한국 입국 허락을 받은 입장이고, 다른 한 명은 한국이 공인하는 나라의 자산이 되어 있는 것이다.


많은 이가 이근 대위에 열광하는 것은 주변 눈치나 보고 아무 생각 없이 살아가는 요즘 한국인들의 모습에 좌절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한국생활은 의협심이나 애국심을 갖고 자신을 희생하면 인정도 못받고 바보취급이나 받기 일쑤이다.

오히려 좋은 게 좋은 거'라며 눈 감고 동조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가해진다. 그러다보니 이근 대위의 서릿발서린 원칙주의자같은 모습에 한국인들이 그동안 갈구했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 아닐까.

그의 아버지는 아들에게 늘 '모국에 헌신하는 자세'를 강조했다고 한다. 지금 한국은 그 어느 때보다 그 같은 애국자가 필요한 시기이다.

미국의 혈맹인 대한민국 군인도 미국 군인처럼 대우받는 그날이 오길 바라며, 뜨거운 열망을 품고 한국과 미국 사이에서 나름대로 봉사를 열심히 하고 있는 수많은 젊은 경계인들을 보다 더 품어줄 수 있는 한국사회가 될 수 있기를 희망해 본다.

<여주영 고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