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여름에는 한반도가 온통 물에 잠겨버리거나 떠내려가는 듯 했다. 캘리포니아의 절반 밖에 안 되는 그 조그만 반도에 웬 비는 그렇게 많이 쏟아지고 태풍은 무슨 일로 그렇게 자주 휩쓸고 지나갔는지, 산이 무너져 내리고 도시와 농토가 물에 잠겼던 그 심한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가을이 되자마자 이번에는 자연 재해보다 더 세찬 풍랑이 한반도에 몰아닥치고 있다.
첫 번째 풍랑은 서해상에서 일어났다. 서해 연평도에서 북한군이 자행한 비인도적 사건은 국내외 동포들을 경악과 분노에 휩싸이게 하기에 충분했다. 아무리 코로나 방역에 몰두해 국경을 넘어오는 사람들을 막는 것이 저들의 방역 규칙이었다 하더라도 생명을 경시하는 그 같은 몰지각성에 대해서는 혀를 차게 만든다. 자칫 9.19 합의마저 바다에 수장되는 것은 아닌가 염려스러웠다.
그렇지 않아도 지난 6월 북측이 일방적으로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시켜버린 이후 남북은 적대관계에 가까울 정도로 냉랭해져있었다. 그런데 또 이런 만행을 저지르다니, 그나마 사건 직후 북측이 이례적으로 김정은 위원장의 사과를 전해옴으로써 남북관계에는 하나의 전기가 되었다. 그러나 사과의 진정성을 보이자면 북측이 공동조사에 나서고 조속히 군통신선을 재가동해야 한다.
두 번째 풍랑은 대륙과 해양에서 동시에 일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한국에 대해 서로 자기편만 되어달라는 압박을 가함으로써 한반도가 미중 갈등의 최전선이 되고 있다. 군사 동맹인 미국과 경제 공동체인 중국 사이에서 한국은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으나 한편으로는 지금까지 불리하기만 했던 지정학적 위치를 유리한 위치로 전환시킬 수 있는 시험대에 올랐다고 볼 수 있다.
이와는 별도로 지금 한국정부는 자주외교와 종전선언을 설득하기 위해 미국의 조야와 다각적인 접촉을 벌이고 있는 중이다. 유엔총회 등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거듭 종전선언을 호소한데 이어 최종건 외무차관과 이도훈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 등이 워싱턴을 바삐 다녀갔다. 앞으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를 정착시키기 위해 다자외교를 복원하며 종전선언은 그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
북한은 지난 10일 노동당 창건 75주년 행사에서 신형 ICBM 등을 공개하면서도 절제된 톤으로 ‘남녘 동포들과 다시 굳건히 손잡게 되기를 바란다’는 말을 전해왔다. 내년 1월에는 제8차 당 대회를 열어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을 수정하고 ‘새로운 길’을 제시할 것으로 보이는데 북한이 명심해야할 일은 핵과 경제 제재를 그대로 두고 자력갱생만으로는 일어설 수 없다는 점과, 한국 말고는 실제적으로 북한의 경제 발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나라가 없다는 사실이다.
미국 대선에서 누가 승리하는 것이 한반도 평화정착에 유리할 것인지 단정 짓기는 어렵다. 트럼프의 재선이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의 개인적 친분으로 대화를 이어갈 수 있어 유리할 것 같으나 불확실성이 큰 약점이다. 바이든이 승리해 2,000년 이후 처음으로 한미 두 나라 진보 정권 간의 조합이 이루어진다면 동맹을 존중하고 신뢰하는 가운데 일관성 있는 외교적 접근 방식이, 비록 실무진 급의 대화 우선으로 속도는 늦더라도 안정적일 것이라는 견해가 많다.
한국의 야당에서는 공무원의 비극적 사건을 정치 쟁점으로 삼으며 남북을 또다시 냉전 구도로 몰아가려 하고 있다. 일부 보수 언론들이 이달 초 폼페이오 장관이 한국을 방문하기로 했던 것이나 연기한 것이나, 모두 트럼프 대선캠프의 사정 때문인데 마치 한국정부에 무슨 잘못이라도 있었던 것처럼 왜곡 보도하는 의도는 너무 속이 보인다. 단군조선 이래 4,353년을 이어 오는 동안 996번이나 외침을 받아온 고단한 우리 민족이다. 한반도는 다시 대결과 평화, 사대와 자주, 수구와 개혁의 기로에 서있다. 역사는 지금 한민족에게 기회를 주면서 동시에 응답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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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현 한민족평화연구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