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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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끼니

2020-10-08 (목)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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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끼니’, ‘끼’는 밥 또는 식사의 순수한 우리말이다. 한국 사람에겐 밥을 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전쟁과 근대화를 거치며 잘먹고 잘사는 것이 목표였고 밥 굶지 않기 위해 노력했던 시절이 있었다. 물론 요즘도 끼니를 챙기기 위해 우리는 열심히 살고 있다.

그래서인지 우리 인사말 중에 밥과 관련된 인사말들이 많아서 한번 찾아 보았다. 안부를 물을 때 ‘요새 밥은 먹고 다니니?’, 고마울 때 ‘나중에 내가 밥 살게’, 재수 없을 때 ‘너 진짜 밥맛 없어’, 혼날 때 ‘너 오늘 밥 먹을 생각하지마’, 위협할 때 ‘너 콩밥 한번 먹어 볼래?, 걱정할 때 ‘ 아파도 밥은 꼭 챙겨 먹어’ 등 많은 인사들이 있다. 이처럼 우리의 생활에서 중요한 끼니를 요즘처럼 열심히 챙기며 살았던 적이 있었던가?

지난 3월부터 온식구가 집에서 삼시세끼를 꼬박꼬박 챙겨 먹고 있다. 길어도 몇 달이면 끝날 줄 알았는데 반년 넘게 집에서 온식구가 복닥거리며 살고 있다. 처음에는 사재기로 불안하여 살 수 있을 때 이런저런 식품들을 사놓고 버리지 않기 위해 열심히 음식들을 해먹었다. 외식이나 배달도 쉽지 않았으므로 집밥을 계속 해먹었다. 계속 똑같은 음식을 먹을 수 없으니 다양하게 해먹고 먹고 싶은 음식이 생기니 또 해먹고 정말 개미지옥이 따로 없었다. 그나마 이렇게 식구들이 맛있게 잘 먹고 건강하게 지낸 것은 감사한 일이다. 동네 아줌마들이랑 카톡 단체방에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지막은 항상 ‘오늘 점심(저녁)은 뭐 먹어?’로 끝이 난다. 삼시세끼를 꼬박 해먹는다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질문에 우리는 각자의 머리에서 쥐어짜낸 메뉴들을 알려주고 멋드러지게 한상 차린 사진도 올린다. 각자 올린 메뉴를 보고 ‘아, 나도 오늘 그거 해먹어야겠다’ 아이디어를 얻기도 하고 레시피를 공유하기도 냉동식품을 멋진 요리로 바꾸는 기술도 가르쳐준다. 끼니를 준비해야 하는 고통을 분담한다고나 할까.

맛과 멋을 아는 미식가 H, 대식가 아들들 때문에 요리의 달인이 된 E 언니, 도깨비 방망이처럼 뚝딱 음식을 만들어 내는 B, 요리 솜씨가 좋아 못하는 요리가 없는 C, 과자만 먹는 A가 모인 단톡방에서 우리는 살아가는 이야기, 날씨 이야기, 아이들 이야기, 시덥잖은 농담 이야기를 하다가도 마지막은 ‘오늘은 뭐 먹어?’로 끝나는 우리의 이야기. 지금도 단톡방에 카톡이 울린다.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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