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차가 안가요
2020-09-29 (화)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
어려서는 어지러워 그네도 못탔고 커서는 육교도 피해 다니던 겁쟁이였던 나는 솔직히 말하면 그동안 운전을 피하고 있었다. 애들이 커가는데 앞으로 어쩌나 하던 참이었다. 그런데 막상 운전면허 시험을 통과하고 나니 사정이 달라졌다. 눈앞에 보이는 건 모두 차였고 당장 운전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남편이 빅세일을 기다려 새차를 하나 구입하자고 했는데 어찌나 시간이 안가던지 지루했다. 마침 아는 분이 플로리다로 이사를 가며 애지중지하던 차를 판다고 하여 그 차를 사게 되었다. 그러나 전 주인이 관리 잘했다는 그 차는 비오는 날 창문이 슬슬 내려간 후 올라오지 않았고 계속 문제를 일으켜 많은 돈을 지불해야 했다.
그날도 문제가 있어 차를 고치러 딜러에 갔다. 견적을 내주겠다기에 기다리다 매장에 갔다. 갑자기 앞에 서있는 샛빨간 차에 눈길이 머문 것은 값이 매우 저렴해서였다. 가격이 잘못 붙었나 싶어 직원에게 물어보니 딱 1대 남았는데 파격세일이라고 하며 트레이드를 권유했다. 계산을 해보니 계속 들어갈 차 수리비에 비해 새로 사는 편이 훨씬 나은 듯했다. 세일즈맨은 내게 어플리케이션을 남편 대신 기입하고 자기가 남편에게 전화하여 본인인가 확인만 하면 된다고 했다. 값이 싸니 누군가 먼저 사갈 수도 있겠다 싶어 시운전도 안해 보았다. 새차의 키를 건네받고 시동을 켠 순간 나는 눈앞이 캄캄해졌다. 세일즈맨은 모든 수속이 끝나서 리턴이 안된다며 스틱 시프트의 차를 집에까지 가져다주었다.
다음날 아침 나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차가 안가!! 남편이 차를 보더니 놀라며 어떻게 타보지도 않고 샀냐고 화를 냈다. 다시 운전교습을 받고 배우면 쉽게 해결될 줄 알았던 수동운전은 힘에 겨웠고 샌프란시스코에는 언덕이 많아 간혹 시동이 꺼지면 당황스러웠다. 등하굣길에 아이들이 일단 이단을 외쳐대며 불안해 하여 결국은 남편과 차를 바꾸었다. 남편은 차도 맘에 안들지만 흔치 않은 레온 계열의 샛빨간 해치백(hatchback)을 남자가 타고 다니니 스타일이 엉망이라고 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날 세일즈맨은 회의중이던 남편에게 전화하여 이름 석자와 내가 그의 아내인가만 확인하였다고 한다. 돌다리도 두드리며 가는 성격의 남편은 내가 한마디 상의도 없이 새차를 구입해온 실력에 감탄(?)했다고 했다. 차를 새로 구입하려고 샤핑을 하는데 그해 가을 파란하늘 아래 물든 단풍과 어울렸던 샛빨간 왜건(wagon)이 생각났다.
<강영혜 (아름다운 여인들의 모임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