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기자와 검사가 골목대장”

2020-09-24 (목)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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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직전 대통령 두 사람은 지금 모두 감옥에 있다. 또 한 사람은 아직 법정을 오가고 있다. 또 한 분은 와병 중. 이 두 사람도 전에 옥살이를 했다. 생존해 있는 전직 대통령 네 분이 모두 감옥에 있거나, 감옥에 갔다 왔다.

한국의 법무장관-. 직전 장관은 요즘 재판을 받느라 바쁜 것 같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일부 친인척은 이미 실형을 선고받았다. 현직 장관에게는 의혹이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검찰 조사가 진행중이다. 미국생활이 오래 된 사람 중에는 한국 정치에는 관심이 없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하지만 대략 이정도까지는 안다. 워낙 시끄럽기 때문이다.

장관의 대척점에 서 있는 듯한 검찰총장은 어떤가. 처가쪽 어른이 사문서 위조인가 하는 혐의로 기소됐다는 이야기까지는 들은 것 같다. 제기되는 의혹들이 복잡해서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겠고, 알고 싶지도 않지만 한 나라의 법무장관과 검찰총장이 어떤 자리인가. 그 직에 있는 사람들이 모두 이런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다.


현 정권 출범 전까지 한국에는 11분의 전직 대통령이 있었다. 유고로 잠시 대통령직을 이어 받았던 한 명을 빼면 모두 10사람. 이중 두 분은 대통령을 했기 때문에 비극적으로 생을 마쳤다. 대통령을 하지 않았다면, 그렇게 타계하시지 않았을 것이다. 한국 대통령 직은 고위험 직종이다. 치사율이 20% 가깝다. 나머지 사람도 그 자신이 감옥에 가거나, 아니면 아들들을 감옥에 보내야 했다. 진보나 보수 가릴 것 없다. 초기 두 대통령은 모두 쫓겨났다.

AP통신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해마다 미국의 직업을 위험 순으로 발표했다. 매년 부동의 1위는 알래스카 킹 크랩 잡이였다. 동영상을 보면 이 직업이 얼마나 위험한지 안다. 조업중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나온다. 그래도 지원자가 몰리는 것은 단기 조업으로 1년 생활비를 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직업도 치사율이 20%에 이른다면, 게다가 나중에 혹 감옥에 가야 할 지도 모른다면 지원자가 얼마나 될까.

한국 공직자 후보 청문회를 보면 늘 감탄하던 일이 하나 있다. 의원들이 족집게 도사 같았다. 부동산 투기나 각종 특혜, 위장전입 등의 의혹을 어쩌면 그렇게 잘 잡아낼까. 특종의 연속이었다. 한 직장동료가 말했다. “어떻게 잘 아느냐구요? 지들도 다 하고 있으니까요.” 그는 한국에서 청와대 비서관을 했던 사람이다. 청문회 때문에 장관 후보 구하기가 힘들다는 한국 뉴스가 들릴 때마다 그 말이 떠오른다. “지들도 다 그러니까-“.

9.11 테러로 3,000여명의 미국인이 떼죽음을 당했다. 이 일 때문에 당시 부시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졌던 기억이 없다. 대통령과 전 미국민이 애도에 들어가고 응징과 재발방지를 다짐했다. 이런 사회에 오래 살아서 인지 큰 일만 터지면 대통령에게 비난이 쏟아지는 한국 풍토는 이해하기 어렵다.

세월호 참사-. 선박회사가 고지식할 정도로 안전수칙을 지켰더라면, 직원들이 정직했다면, 감독기관이 원칙에 충실했다면 이 일이 벌어졌을까. 이 비극은 관행화되고 익숙해져 마치 생활의 일부분처럼 정착한 부정직, 그래서 벗어나려고 하면 오히려 불편한 한국사회의 구조적이고 총체적인 부정직이 빚어낸 참사는 아닌가. 누가 대통령이든 그게 대통령 잘못인 것인가. 이 비극적인 사태의 책임을 추궁하는 방향의 초점이 엉뚱하다는 생각을 해 왔다.

페루의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모두 감옥에 갇힌 적이 있다. 그 전 대통령을 부패혐의로 집어 넣었던 대통령이 후임자에 의해 같은 혐의로 수감됐다. 먼저 들어간 감방 선배 대통령이 후임 대통령의 영치금을 대줬다는 보도가 전해졌다. 전직 대통령 두 사람이 모두 부패혐의로 재판 중이던 한국이 떠올랐다.

한국의 잘 알려진 보수논객 한 사람이 그때 LA에 왔다. 페루의 예를 들며 한국사회의 문제는 보수와 진보 프레임이 아니라, 정직이라는 잣대로 분석해야 하지 않을까고 질문했다. 그는 이런 시각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 몇 사람이 모인 그 자리에서 한국사회 부조리의 원인은 온통 진보세력으로 지목됐다.

정직과 공정이 지켜지지 않는 사회, 거기에 인간의 원초적인 탐욕까지 더해진 것이 사회의 작동 에너지라면 그 수렁에서 빠져 나올 수 있는 장사가 많지 않다. 촘촘히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당사자는 아니라고 해도 배우자, 자식, 부모, 형제까지 범위가 넓어지면 걸면 걸리고, 털면 털리는 곳이 지금의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 한국이다. 한국은 정서적으로 연좌제를 벗어나지 못한 사회이기도 하다.
“기자와 검사가 골목대장처럼 설치는 사회는 건강한 사회라고 할 수 없다.” 기자 출신인 한 정치인이 했던 말이 떠 오른다. 한국사회는 지금도 검사와 기자를 골목대장으로 만들고 있다.

<안상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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