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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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이제는 슬퍼도 울지 않는다

2020-09-23 (수)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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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로하신 부모님이 한국에 계셔서 이래저래 걱정도 많고 한국에 갔다 올 때면 눈물바람을 하고 왔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내 눈물의 밑바닥에는 현실과 미래를 다 부정하고 과거에만 매달려 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예전에 아버지는 이러셨는데, 엄마는 이러셨는데, 왜 지금은 저러실까? 또한, 앞으로 더 기력 잃고 자리보전하고 누우실지도 모를 부모님에 대한 두려움이 컸다. 내 감정의 참모습을 깨닫고 난 뒤, 부모님의 노환과 또 나에게 닥쳐올 노환에 대해 그냥 받아들이기로 했다. 아이가 자라면 학교에 가고, 사춘기가 오고, 사회에 나가 독립을 하는 것처럼 나이가 들면 늙고 병들고 약해진다는 것을 내 부모님이든 내 형제든, 더구나 나에게도 다가올 문제이며, 심지어 선택할 권한도 없으니, 어떤 노년의 모습이든지 받아들이고 순리대로 살자고 마음먹었다.

간장게장을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요즘도 껍질 딱딱한 게장을 즐기신다. 집게다리를 집어가는 아버지에게 엄마가 한 말씀 하신다.

“딱딱한 걸 그리 드시다 얼마 안 남은 이 부러지겠어요.”


“이게 게딱지로 보여? 뭘 비벼 먹으래? 사람 참...”

두 분의 대화를 듣다 보면, 이건 완전히 시트콤이다 싶을 때가 많다. 같이 앉아 뉴스를 보는데도 두 분이 다른 말을 하신다. 처음에는 이런 대화조차 속이 상해 외면하곤 했다. 그런데, 작년에 가서는 웃었다. 달력에 병원 가시는 날을 붉은색으로 동그라미를 쳐 놓았는데, 아침마다 저건 뭐냐고 물어보시는 아버지에게도 웃으며 반복해서 얘기해 드릴 수 있었다. 말귀가 점점 어두워지는 두 분을 위해, 천천히 또박또박 반복해 말씀을 드리면서도 웃을 수 있었다. 떠나오는 날에도 눈물바람을 하지 않았다. 사실은 그래도 꾸역꾸역 올라오는 애잔함을 꾹꾹 다독이고 누르며 울지 않았다.

딸아이가 아침부터 눈이 퉁퉁 부어 나오더니, "디어 마이 프렌즈"라는 드라마를 봤는데 엄마는 절대 보면 안 된다고 한다. 너무 슬퍼서 밤새 울며 봤다는 거다. 내용을 보니, 늙고 치매 걸리고 그런 친구들 이야기다. 딸아이는 예전의 나처럼 늙어가는 부모의 모습을 인정할 수 없어 밤새 울었던 게다. 나는 그 드라마를 보고 울지 않았다. 누구나 가야 하는 길이고, 나 또한 갈 길이며, 그래서 두려워도 바람에 머리카락 맡기듯 그렇게 가려 한다.

<송일란 (교회 사무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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