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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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산 안창호의 리더십

2020-09-22 (화) 김유숙 / 워싱턴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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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안남도 대동강 하류 도롱섬에서 태어난 도산 안창호는 열여섯 살 때 평양에서 청일전쟁을 접하고 일본과 청나라가 마음대로 우리 나라에 들어와 싸우는 것은 우리에게 힘이 없는 까닭이라고 여기게 되었다.
이 깨달음을 통해 그는 그때까지의 평범한 생활을 깊이 반성하고 나라와 겨레를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는 결의를 다진다.
1902년 유학을 위해 도미하여 동포들의 어려운 처지를 보고 공부를 포기하고 한인지도에 나섰다. 무엇보다 힘을 기르기위해선 각 개인이 사회에 모범을 보이게 하는 것이 우선이며 각자의 인격이 제대로 갖춰져야 사회, 민족, 국가, 세계까지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설파했다.

작은 일부터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며 장사를 해도 속이지말고 정직하게 하고 오렌지 하나를 따더라도 성실히 따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일임을 가르쳤다.
도산의 주도하에 해외에서는 1910년 5월 통합 한인단체로 대한인국민회가 결성되었다. 이것이 지금의 각 주마다 조직화 되어있는 재외동포를 아우르는 한인회의 첫 출발의 전신이요 모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재미동포의 한사람으로서 지금의 한인회들 중엔 한인회 본연의 사명을 훌륭히 다하고 있는 단체도 있으나 일부 단체는 동포들의 삶을 대변하고자 하는 자세나 조국의 안위를 걱정하는 모습보다 오히려 동포들이 한인회를 걱정하는 웃지못할 상황을 연출케 하는 경우가 있다.

워싱턴 동포사회에서도 한인회가 사방팔방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고 서로 경쟁하고 있다. 이것은 결국엔 힘이 모이질 않고 분산되며 파괴되기 쉽상이다. 도산은 이런 민족적 분열의 악습을 알기에 통합과 통일을 언제나 어디서나 외쳤다.
도산 자신이 자리를 양보하더라도 통일하여 대공을 이룰 수 있다면 기꺼히 자리에 연연해 하지 않았다. 이러한 도산에게 언제나 사람들이 몰려든 것을 보면 도산은 한국의 민주적 리더십의 전형적 모델이 아닌가 한다.


1920년대 말 중국에서의 한국 독립 운동계는 결국 민족주의자들의 한국독립당과 사회주의자들의 한국 독립운동자동맹으로 나뉘어지고 말았다.
이때 벌써 한민족에 민주와 공산의 이념대결의 시대적인 불운이 찾아오기 시작했다. 불행한 역사의 연속이다. 도산은 조국의 독립과 번영을 위한 큰 공의를 위해서는 사상과 이념과 종교를 초월해서 하나됨을 강조하였다.
이것이 지금의 분단된 한반도의 위기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시대정신이 아닌가 생각한다. 남남갈등, 지역갈등, 좌우대결이 최고조로 달하고 있는 작금의 조국을 바라보는 재외동포의 한사람으로서 한반도의 현재의 위기상황이 심히 염려된다.

도산은 4년 반에 걸친 두 차례의 감옥생활 끝에 얻은 병이 악화되어 민족의 광복을 보지못한 채 1938년 3월 10일 경성대학 부속병원에서 만 59년 4개월의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그 옛날 도산의 지도자론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어느때보다 절실히 요구되어지는 것이 아닌가 한다.
도산이 말하는 지도자의 자질은 정직과 신용이 우선되어야 하며 비전을 제시할 줄 알아야하며 인간적이어야 하고 모든 일에 솔선수범하고 평생 배움의 자세를 가져야한다고 정의 내렸다.

도산의 가르침은 요즘 젊은이들이 노력하지않고 요행을 바라는 정신상태에 일침을 가한다. 그리고 정직과 성실을 우선으로 하여 무실, 역행, 충의, 용감을 가르침의 우선으로 두어 인격혁명 없이는 대의를 이룰 수없음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시민윤리의 위기와 거짓과 요행을 질타했다. 죽더라도 거짓이 없어라. 농담이라도 거짓을 말하지말라고 한 도덕적 권위가 지금의 우리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있다.
인간을 중시한 도산, 부국강병이 이상세계가 아니라 도덕과 윤리로 이루어진 세상이 이상세계임을 가르친 도산, 법을 지키며 정직과 신용을 가르친 합리주의자인 도산, 대의를 위해선 자신을 버리고 기꺼히 양보하여 신뢰와 통합을 추구한 도산이었다. 이런 도산의 지도자상이 더욱더 절실히 그리워진다.

<김유숙 / 워싱턴여성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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