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도 기척도 없이, 갑자기 찾아온 옛 친구처럼 가을이 왔다.
용광로처럼 무겁고 뜨겁던 여름을 어떻게 밀어 냈는지, 은근히 힘자랑하듯 여름이 있던 그 자리에 가을이 와 있다. 천둥 번개가 요란한 여름이었다. 셀 수 없이 내려치던 번개는 수많은 산불을 일으켜 여름의 끝부분을 태워버렸다. 대낮도 캄캄하게 했던 두꺼운 재구름이 하늘을 덮고 길을 막아도 가을은 왔다. 가을은 조용하고, 묵직하고 점잖은 신사와 같다. 여름 한낮의 숲을 매미의 울음소리가 채웠다면, 가을 어스름 저녁 숲에선 귀뚜라미 소리가 풍성하다.
왠지 모르겠다. 가을이라는 단어만 생각하면 어렸을 적 고향 생각이 떠오른다. 내 기억 속 어린 시절 고향의 내 나이는 10살 안팎쯤이다. 지금 되돌아보면 다소 위험했을 수도 있는데 나와 동생은 그 어린 나이에도 둘이서 산골 마을의 깊은 산속도 마구 휘젓고 다녔다. 산속에는 우리만 아는 특별한 장소들이 많았다. 앞산 새이봉 언저리 어디쯤이면 싸리버섯이 나고 거기서 오른쪽으로 좀 깊이 들어가면 능이버섯이 있는 곳을 우리는 알고 있다. 분홍빛 깨끗한 싸리버섯과 지금도 코끝에서 느껴질 것만 같은 향이 가득한 능이버섯을 내밀었을 때 보았던 엄마의 놀란 웃음이 아직도 생생하다.
내게 가을의 소리는 새벽 바람에 후두둑 툭툭 떨어지는 알밤 소리다. 가을의 색깔은 노랑과 빨강이다. 아마도 내 고향 뒷산에는 참나무와 단풍나무가 군락을 지어 꽉 채워져 있던 것 같다. 지금도 선하다 노랑, 빨강, 노랑, 빨강… 내게 가을꽃은 코스모스다. 꽃씨도 귀했던 시절, 학교에서 코스모스 씨를 나누어 주었다. 학교 가는 고갯길 팔밭 언저리에 뿌려 놓았던 코스모스가 해마다 가을이면 넘치도록 피어났다. 작은 바람에도 크게 흔들리던 코스모스의 물결이 가을 길에 가득하다.
단풍 많은 시골에 살다가 사람 많은 서울을 거쳐 큰 바다 건너 미국에 산다. 45년을 미국에 살았는데도 20년을 산 한국말이 내게 더 편하다. 햄버거는 가끔 별미로 먹어보고 매일 매일은 밥을 먹고 산다. 한국에서 내 삶의 봄을 살았다면 이곳에서 여름을 보내고 이제 가을을 맞는 셈이다. 봄을 어떻게 보내고 여름을 어떻게 지냈는지 모르고 살았는데 이제 보니 가을이다. 문을 열고 밖에 나가면 약간은 차가운 기운의 공기가 살갗에 닿는다. 정신이 맑아지고 길 위에 구르는 낙엽들이 보인다. 주위를 돌아본다. 늘 거기 있었던 것들이지만 새롭게 느껴지는 많은 것들이 보인다.
한해의 자연 속에 가을이 있듯이 우리의 삶에도 가을이 있는 것 같다. 김형석 교수라는 분의 ‘백 세를 살아보니’라는 제목의 책을 읽어보니 그의 인생의 황금기는 60세부터 75세 사이라고 했다. 그가 연세대학교 교수직을 65세에 은퇴했으니 그의 황금기는 은퇴 이후의 삶의 상당 부분을 포함하고 있던 셈이다. 그는 60세쯤에 철이 든 것 같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나도 그런 것 같다. 무엇 때문에, 무엇을 위하여 사는지 모르면서 자전거 페달을 밟듯이 살다 보니, 아 벌써 가을이 되어 버렸다. 이제야 내가 별것 아니었구나 느끼게 되었다. 정말 철이 드는 모양이다. 좀 천천히 살 걸 그랬다. 목소리를 더 낮추어야 했다. 다른 사람들의 잘하는 것을 더 칭찬해 줄 걸 그랬다. 아, 더 자주 사랑한다고 말해줄걸…. 삶을 치열한 경쟁이나 전쟁처럼 여기며 살아왔던 지난날들이 왜 그랬나 싶기도 하고 후회스럽기도 하다. 백 세를 넘게 사시는 김 교수님은 내게 지금이 인생의 가장 값지고 아름다운 시간이라고 말씀하신다. 지금까지 살면서 쌓아온 경험과 배워온 지식을 이제는 나누어 주라고 한다. 나누는 것이 얻는 것이요 남에게 이익을 끼치는 것이 내게 이익이 된다고 한다.
가을은 겸손하고 아름답다. 햇살이 뜨겁지 않아도 어루만지듯 부드럽게 곡식의 낱알들을 익혀가고 과일에는 풍성한 단맛을 더해간다. 나뭇잎은 자신을 불태우듯 가장 아름다운 색깔로 변하고, 가지고 있는 모든 에너지를 가지에게 주고, 끝내는 마른 몸으로 장렬하게 땅으로 뛰어내린다. 그 힘을 받은 가지들은 넉넉히 겨울의 추위를 이겨내고 봄이 되면 새로운 잎새를 피워낸다. 낙엽 된 나뭇잎들은 나무의 뿌리를 덮고 눈을 맞으며 썩어 거름이 되고, 흙이 되어 나무의 언저리에 남는다.
다행이다. 아직 가을이 깊지 않아서. 무더웠던 여름날을 함께 견뎌주었던 사람이 아직 나와 함께 있어서 다행이다. ‘염색할까?’ 거울 앞에서 아내가 내게 묻는다. ‘하지 마’. ‘왜?’. ‘당신 예뻐’. ‘치-거짓말’. 예쁘다는 나의 말의 진심 따위는 상관없이 아내는 좋아한다. 이제는 검은 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은데 희고 검은 머리가 잘 어울려 보기 참 좋다 네겐. 그래 맞다 단풍이다. 아내에게도 가을이 왔다. 젊었을 땐 주위 사람들이 아내가 예쁘다고 말해주었다. 이제는 내가 아내에게 예쁘다고 말해 주어야겠다. 언젠가부터 보이기 시작한 아내의 속마음이 가끔 미안하고 고맙게 예쁘더니 이제 희고 검은 단풍 든 아내의 머리도 예쁘다. 이제 이 가을 길을 둘이 손잡고 걸어가야겠다. 노란 단풍 가득히 가지런한 자작나무숲 사이를 지나면 붉은 단풍 나무숲이 나오고 좀 더 걸으면 낙엽 진 참나무 숲이 나타나고, 그 후엔 하얀눈 가득한 소나무 숲길이 나올 터이다. 이제 그 길을 감사함으로 걸어가야겠다.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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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용식 (공인회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