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2020-09-1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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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퓰리처상 수상자 강형원 기자의 한민족의 찬란한 문화유산 (8) 전등사 추녀 나부상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강화 전등사 대웅전 추녀 끝에 벌거벗은 여인이 서까래를 받치고 앉아 있는 모습의 ‘나부상(裸婦像).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법당 공사를 하던 목수가 재산을 맡긴 주막 여인이 달아나자 복수를 위해 벌거벗은 목상으로 조각해 날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라고 새겨 넣었다는 전설이 있다.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네 가지 독특한 표정의 나부상.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1621년에 세워진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의 전경.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은 화려한 조각과 장식도 특징의 하나다. 건축사뿐만 아니라 미술사적인 가치가 높은 문화재로 평가받고 있다.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1621년도에 세운 강화도 전등사 대웅전 받침돌 위에 세워진 대웅전 기둥이 오랜 세월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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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입구가 내려다 보이는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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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동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서 있는 아름드리 소나무에는 아직도 아물지 않은 큰 상처가 선명하게 남아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대체연료로 송진을 채취 과정에서 침략자들이 남겨놓은 깊은 상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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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의 동문 앞에 있는 기념품점에 진열돼 있는 상보. 우리 문화의 독특한 상보가 아름다운 전통 색깔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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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5년 재건 때 심은 나무로 추정되는 400여 년 된 전등사 느티나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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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등사 동문(산성문) 으로 방문객들이 올라오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이 보관되어 있었던 전등사는 정족산성 안에 절이 있다.

처마를 받치고 앉은 여인… 목수의 복수인가

강화도 전등사(傳燈寺) 사찰은 고구려 시대 소수림왕 11년인 381년에 세워졌다. 아도화상(阿道和尙)이 본래 이름을 진종사(眞宗寺)로 했다는 전등사의 대웅전은 광해군 13년(1621년) 다시 세워진 건물이다.

대웅전 처마 밑에는 다른 사찰 건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특이한 나무로 조각된 여성상이 쭈그리고 앉아 지붕 네 귀퉁이 서까래를 받치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법당 공사를 하던 목수가 주막 여인에게 재산을 맡겨놓았는데, 이 여인이 이를 가지고 달아났다고 한다. 이에 목수가 그 여성을 벌거벗은 목상으로 조각하여 날마다 부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회개하라는 의미로 네 가지 독특한 표정의 여성상을 법당 건축물에 포함시켰다고 전해 내려온다.


네 가지 여성 목상은 각각 다른 표정이고, 서까래를 받치고 있는 팔 모습도 서로 다르다.

전등사 동문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아름드리 큰 소나무들에는 송진을 받기 위해 껍질을 벗겨낸 상처들이 남아 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대체 연료로 채취됐던 송진을 받아내는 과정에서 침략자들이 남겨놓은 상처가 아직도 아물지 않고 그대로 남아 당시의 상흔을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행정구역상 인천광역시 강화군 길상면에 속한 보물 제178호 전등사는 강화도의 남쪽 끝 정족산의 한 가운데에 자리하고 있으며, 정족산의 세 봉우리와 능선을 따라 삼랑성(三郞城, 일명 정족산성)이 있는데, 이 성은 단군이 세 아들에게 나누어 쌓게 한 것이라는 또 하나의 전설이 내려온다.

당초 이름이던 진종사(眞宗寺)는 고려시대 때인 1282년 부처님 법의 등이 전해진 곳이라 하여 전등사(傳燈寺)로 바뀌었다. 조선시대에는 왕실의 유물과 실록 등을 지켜낸 천년 고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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