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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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개떡

2020-09-17 (목)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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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 한국마켓에 갔다가 진열된 떡 중에 눈에 띄는 떡이 있었다. ‘쑥개떡’ 제주에서 온 쑥으로 만든 떡이란다. 색깔도 곱고 참기름을 발라 반짝반짝이는 그 떡을 덥석 집었다. 집에 돌아와 간식으로 아이들에게는 꿀떡을, 나는 쑥개떡을 커피와 함께 먹으면서 돌아가신 외할머니 생각이 났다.

나는 어려서부터 할머니랑 같이 살았는데, 우리 할머니는 옛날 분이시라 때가 되어 절기들이 돌아오면 그때그때에 맞는 음식을 하셨다. 설날에 가래떡 뽑고, 정월대보름에는 오곡밥과 나물과 동태찌개, 여름에는 콩을 삶아 콩국과 비지찌개, 추석이면 송편과 토란국, 동지섯달에 팥죽, 백설기, 수수팥떡, 시루떡, 쑥개떡 등 이런저런 음식들을 많이도 하셨다. 어린 나는 할머니가 정성을 다해 해주시니 먹기는 했지만 콩도 싫고 팥도 싫고 나물도 싫어하던 때라 별 맛을 몰랐다. 할머니가 가끔 쑥이 생기면 쌀가루를 넣어 쓱쓱 손으로 대충 빚어 찌면 어느 순간 개떡이 만들어졌는데, 쑥이 잔뜩 들어간 심심하고 간간한 그 맛이 난 참 좋았다. 쑥을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쑥의 개운한 맛과 쌀가루 소금으로 간을 한, 그 심심한 떡이 참 맛있었다.

할머니가 아줌마였을 때 소화가 잘 안 되는 속병으로 고생을 하셨는데, 6.25때 피난 가서 먹을 것이 없어 쑥만 3년을 뜯어먹고 그 병이 씻은 듯이 나았다는 우리 엄마의 증언이 있다. 나는 단군신화에 왜 쑥과 마늘이 나오는지 이해가 확 들었다. 엄마 말로는 그때 쑥개떡은 먹을 것이 없어서 밀가루나 보릿가루나 다른 것들을 섞어 만든 것이여서, 이건 떡을 먹는 건지 쑥을 먹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그런 가루도 없으면 쑥을 넣고 죽을 끓여 먹었는데 둘다 다 맛이 없었다고.

‘개떡’은 좋은 의미의 단어가 아니다. 여기서 ‘개’는 가짜나 형편없는 것을 말한다. 보릿고개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먹던 음식으로 떡이라고 하기에도 그렇고 떡처럼 보이지만 가짜 떡이여서 개떡이라 불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개떡이 들어간 말들 치고 좋은 뜻은 없는 거 같다. 가짜 떡이였던 개떡이 이제는 추억의 음식이 되어 쌀가루와 만나 고소하고 설탕을 넣어 달달하며 참기름을 발라 반짝이는 프리미엄 개떡이 되어 떡집 앞에 놓여 있다. 하지만 나는 할머니가 무심히 쓱쓱 만들어 주셨던 그 심심한 쑥개떡이 먹고 싶다.

<김주성 (주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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