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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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제 혼수함

2020-09-14 (월) 윤영순 / 우드스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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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범이 와서 저것들을 퍽퍽 물어 갈꼬.”
눈앞에 어른거리는 장성한 딸들을 보고 태산 같은 걱정이 밀려 올 때면 종종하시던 엄마의 넋두리였다. 그럴 때면 입을 삐쭉거리던 언니들도 때가 되니 중매도하고 연애도하고 제짝을 찾아 엄마의 염려가 한낱 기우였다는 확실한 눈도장을 찍어주고 시집을 갔다. 언니들과는 달리 혼기가 꽉 차도록 곁에만 두고 있는 무심한 엄마에게 이따금 조바심의 눈길을 보내보지만, 막내딸만은 조금씩 비워야 할 마음의 여유가 필요하신 듯 그때마다 눈길을 피하셨다.

흔히 자식들 모두 시집 장가보내고 나면 집안기둥 뿌리가 흔들린다라는 말은 철이 들고 엄마 곁을 떠난 후에야 깨닫는다. 아닌 게 아니라 엄마는 비워진 곡간에 곡식을 다시 채우듯 막내딸을 위해 혼수용품을 차곡차곡 준비하셨다. 손길이 많이 가는 비단을 위시해서 광목, 옥양목, 양복천은 물론 이불, 담요, 크고 작은 식기류, 하물며 요강단지라는 요즘 세상에는 볼 수도 없는 것에 이르기까지 그 수를 헤아릴 수 없었다. 그러자니 엄마의 허리는 얼마나 휘었을까.

수없이 반복해온 행사처럼 되어버린 일을 오늘도 맑고 바람이 살랑대는 날이라 무거운 철제 트렁크를 낑낑대며 햇살 좋은 곳으로 옮겨 바람을 쐬인다. 엄마가 해준 정성들을 하나씩 펼쳐 혹시나 좀이란 녀석이 옷에 구멍을 내지 않았나 조심스레 한 벌씩 훑어본다. 좀약 냄새 살짝 풍기는 옷가지 사이로 언뜻 엄마의 주름진 얼굴이 스쳐 보인다. 자신을 위해서는 무엇 하나 마음 놓고 쌈짓돈 한번 써 볼 겨를도 없이 막내딸 시집보낼 혼수감을 마련하기 위해 동분서주했을 그 손길이 고스란히 혼수함 속에 녹아 있어서다.
사위가 가난한 집 막내아들이니 엄마의 기우가 너무 앞서가 버렸다. 겹겹이 접어 올려놓은 한복의 숫자는 사철 내내 평생을 걱정 없이 입으라는 듯, 그러나 시대에 따라 유행이 달라지고 나이 따라 체형도 달라진다는 것을 왜 모르셨는지, 사위를 위해서는 금단추가 달린 한복 바지저고리를 위시해서 여름 모시적삼 조끼에도 은단추를 달고 한번 펴면 본 상태로 다시 접기조차 힘든 제사 때나 입을 도포자락하며, 푸르스름한 얇은 안감을 댄 여름 두루마기와 겨울 검은 두루마기 등등, 이 모든 것들이 내 한복처럼 완제품들이다.

한국에 있을 때였다. 신년을 맞아 교회에서는 해마다 목사나 장로들은 한복에 검은 두루마기를 입고 와 신도들에게 떡과 포도주를 나누어 주는 성찬식이 있었다. 그때마다 함에서 한 번도 꺼내 입어보지 못한 남편의 검은 두루마기가 불현듯 생각났을까. 또 제사 때마다 두루마기를 입으시고 “유세차…”하시며 제문을 읽으시던 친정아버지의 나즈막한 부드러운 음성이 지금도 귓전에 들리는듯하다. 제사가 끝난 후에는 으레 두레상에 둘러앉아 졸리는 눈을 비비고 앉아 있노라면 음복 나물을 큰 양푼에 쏟아 붓고 흰밥에 쓱쓱 비벼주시던 엄마의 손맛, 새벽에 먹는 고소하고 촉촉한 갖은 나물에서 풍기는 비빔밥 맛이란….
세월이 흐르면 박물관에나 한 자리 차지할지, 아니면 운 좋게 우리 집안의 소장품이 되어 대대로 전수되어 전해질런지, 평소 과묵하고 든든했던 엄마를 닮은 철제 혼수함을 바라보노라니 절절이 그리움만 가슴을 죄어온다.

<윤영순 / 우드스탁, M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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